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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중계무역의 해결책과 미래 전망 [2편]

정보 보호와 투명성 사이에서 길을 찾다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중계무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양자협정이 이 시대 국제통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지금 그 본질적 생존 전략이 위협받고 있는 상태다. 원산지증명서에서의 전면 정보 공개 의무는, 정보 차단을 기반으로 한 중계 모델에 근본적인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즉, 제3국 송장1)이 발행된 중계무역에서도 FTA 혜택을 받으려면, 비당사국에서 상업서류를 발행하더라도 원산지증명서는 반드시 실제 생산·선적국인 협정 당사국의 기업이 발행해야 한다. 이는 중계업체의 핵심 경쟁력인 ‘정보 비대칭성’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구조적 모순이다.

 

1. 제3국 송장은 물품의 실제 생산국이나 선적국이 아닌, 제3의 국가에서 발행된 상업송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을 한국으로 수입하는데, 상업송장은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가 발행하는 경우가 제3국 송장에 해당한다. 이때 물품의 실제 흐름은 중국 → 한국이지만, 송장 발행자는 싱가포르에 위치하므로 ‘제3국 송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왔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오스만 제국 때문에 지중해에서 밀려났을 때도 결국 대서양으로 눈을 돌려 더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지금의 FTA 투명성 요구도 중계무역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대행업체를 활용한 우회 전략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인도 CEPA에서 운송회사를 명목상 수입자로 내세우는 방식은, 비록 아직 검증된 사례는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중계무역의 정보 노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접근법이 성공한다면 향후 주목할 만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선택적 정보 공개 시스템 같은 혁신적 방안도 중계무역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ESG 경영이 확산되고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중계무역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 요즘 기업들은 공급망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런 복잡한 관리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중계업체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AI와 빅데이터로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일도 중계업체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문제의 해결을 넘어, 천년 전통과 21세기 혁신이 만나는 완전히 새로운 중계무역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 이제 그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현실적 돌파구, 대행업체 활용 전략의 실제


한-인도 CEPA 사례로 본 정보 보호 방법

한-인도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활용한 중계무역 구조를 예로 들어보자. 인도의 한 화학업체가 원료를 생산·공급하지만, 한국의 정유회사는 미국에 있는 중계업체와 무역계약을 체결해 물품을 들여온다. 이때 미국 업체는 인도 공급업체의 정보가 한국 측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직접 거래 대신 운송회사를 ‘명목상 수입자’로 세우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FTA 특혜를 적용받으면서도 핵심 거래 정보를 차단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세부 구조는 아래와 같다.

 

1단계: 서류 작성 전략

• 원산지증명서의 ‘수입자(Importer)’란에 한국의 운송회사 정보를 기재
• 상업송장(Commercial Invoice)과 선하증권(B/L)도 동일하게 작성
• 수입신고서에서는 운송회사를 ‘수입자’, 실제 정유회사를 ‘납세의무자’로 분리 신고

 

2단계: 법적 근거 마련

• 운송회사와 정유회사 간 ‘무역대행 위탁계약서’ 체결
• 실제 화주(정유회사)가 물품 대금을 직접 지급했다는 증빙 준비
• 물품이 최종적으로 정유회사에 인도되었다는 서류 보관

 

3단계: 리스크 관리

• 모든 서류의 상품 정보, HS코드, 수량, 가격 정보 일치시킴
• 사후검증에 대비해 원산지 관련 증빙 서류 5년간 보관
• 세관의 소명 요청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계 구축

 

하지만 이런 방식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현장에서 관찰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류 불일치로 인한 통관 지연

실무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서류 간의 정보 불일치다. 원산지증명서에는 A회사가 수입자로 기재되어 있는데, 선하증권에는 B회사가 수하인(consignee)으로 적혀 있거나, 상업송장의 가격과 원산지증명서의 가격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소한 불일치는 세관이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데 추가 시간이 걸리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완 요구가 반복되면서 통관이 몇 주씩 지연되기도 한다.

 

특히 FTA 특혜관세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서류의 일관성이 더 엄격하게 요구되므로, 작은 오차 하나가 곧바로 통관 리스크로 이어진다. 따라서 기업은 거래 단계별로 서류를 교차 점검하고, 발급 기관·운송사·거래 당사자 간 정보가 완벽히 일치하도록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대행 관계 입증의 어려움

대행업체를 명목상 수입자로 세우는 방식은 정보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처럼 보이지만, 세관의 검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제가 따른다.

 

세관은 ‘진짜 대행인지, 단순 차명거래인지’를 판단할 때 계약서와 대금 흐름을 함께 살핀다. 정상적인 대행 구조라면 실제 화주가 물품 대금을 직접 지급하고, 대행업체는 통관·운송 절차만 대신한다. 이 경우 수입신고서에는 대행업체가 ‘수입자’, 실제 화주가 ‘납세의무자’로 기재된다.

 

반대로 계약 관계가 불분명하거나, 단순히 대행업체 명의만 빌려 수입자를 꾸민 경우라면 차명거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세관 검증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업을 법적 리스크에 노출시킬 수 있다. 결국 대행 전략은 ‘정보 차단’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장치가 함께 마련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2. 미래를 위한 제도혁신 로드맵


연결 원산지증명서 전면 확대

한-미, 한-EU, 한-중 등 핵심 FTA에도 연결 원산지증명서를 도입해 단순 물류·포장·보관에 대해서는 재발급을 허용해야 한다. 또한 현행 1년 이내의 발급 제한은 실제 중계무역에서 거래·운송 지연이나 보완 절차로는 너무 짧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를 3년으로 연장해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복잡한 공급망 거래에도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양수도 허용 및 분할 수출 시 발급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택적 정보 공개 시스템

블록체인 기반 서류 플랫폼으로 원산지 검증에 필요한 최소 정보만 공개하고, 민감한 상업정보는 암호화해 세관 검증 단계에서만 해독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중계무역의 핵심 가치인 정보 차단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FTA의 투명성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중계무역 전용 인증제도

전문 중계업체에게 간소화된 C/O 발급 권한과 통관 패스트트랙을 부여해 ‘합법적 정보 차단’과 ‘투명성’의 균형점을 마련해야 한다. 중계무역에 특화된 인증수출자 제도를 도입하여, 일정 요건을 충족한 중계업자에게는 자율적 원산지증명서 발급 권한과 절차 간소화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

 

3. 현장 대응 전략


정확한 규정 확인의 중요성

중계무역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확한 규정 확인이다. FTA 협정문은 복잡하고 전문적이다.

 

그래서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할 때는 세부 조건 하나하나가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CEP의 연결 원산지증명서 제도는 일반적인 중계무역과 달리 특정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런 세부 사항들을 놓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공식 유권해석 활용

복잡한 중계무역 거래의 FTA 적용 가능 여부는 관세청의 공식 질의회신이나 유권해석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거래 구조나 기존에 유사 사례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확보한 유권해석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므로, 세관 검사나 원산지 검증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다만 정부의 공식 답변은 보수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때가 많아, 혁신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기업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술한 한-인도 CEPA 사례의 질의·답변에서도 기업들이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구체적 가이드라인보다는 숙고하지 않은 듯 보이는 일반적 답변2)에 머무른 바 있다.

 

2. 국민신문고 민원질의 1AA-2506-1010179

 

연구보고서를 통한 거시적 관점

중계무역의 흐름과 전망을 이해하려면 KITA, KDI 등 주요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들 자료는 공급망 재편, FTA 활용, 정책 방향 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실무 가이드와 사례집도 전략 수립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4. 중계무역의 미래 전망


변화하는 무역 패러다임

최근 몇 년간 무역 현장에서 관찰되는 변화들을 보면, 중계무역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들이 많이 보인다. 첫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공급망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변화는 전문적인 중계업체의 역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ESG 기준을 관리하고 인증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는 것이다.

 

둘째,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중계무역이 등장할 것이다. 전통적인 물리적 거점뿐만 아니라, 데이터와 정보의 중계가 핵심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요 예측, 공급망 최적화, 리스크 관리 등은 중계업체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국의 기회, 아시아 중계무역 허브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아시아 중계무역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면서도 미국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동서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국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의 중간자적 지위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중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때 한국을 경유지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통과 혁신의 조화

사마르칸트의 대상들이 낙타 등에 비단을 실어 나르던 그 시절부터, 중계무역은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일이었고, 위험을 분산하고 기회를 창출하는 일이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낙타 대신 컨테이너선을, 비단 대신 반도체를, 오아시스 대신 보세구역을 활용할 뿐이다.

 

그리고 FTA라는 새로운 무역 질서 속에서도 중계무역만의 고유한 역할과 가치를 찾아갈 것이다.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FTA가 중계무역에 던진 도전을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면, 우리는 천년의 지혜와 21세기 혁신이 만나는 새로운 중계무역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이 서 있기를 기대한다.

 

“길을 만드는 자가 길을 지배한다.” 중계무역의 미래 또한 우리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길을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경기TP, 인천TP 등 기관 전문위원

• (전)월드클래스 300, NCS워킹그룹 심의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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