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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RCEP, 한국 경제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지난 11월 4일 태국 방콕에서는 전대미문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규모까지는 아니지만, 전 세계 인구의 48%(36억 명),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2%(27조 4000억 달러), 세계 교역의 29%(9조 6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무역 협정문이 타결되었다. 무역 협상의 또 다른 한 획을 긋게 된 이 협정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인도1)·호주·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2):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 그것이다.

 

1) 인도는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우려하여 2019 방콕에서의 협정문 타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 ‘알셉’이라고 읽는다.

 

세계 최대의 메머드급 FTA인 RCEP은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세계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낳은 열매라 그 의미는 남다르다. 700여 쪽이 넘는 20개 챕터 협정문을 협상하여 전격적으로 합의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절로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RCEP이 2012년 협상개시 선언 후 약 7년여 만에 협정문의 결과가 나온 것이 우루과이라운드의 7년여 협상의 결과인 WTO와 그 협상기간이 신기하게도 일치한다.

 

우리와의 RCEP 체결 회원국 간의 지난해 교역 비중을 보면 아세안(159,741,776천 달러)은 이미 미국(131,588,245천 달러)과 EU(119,972,236천 달러)와의 교역을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RCEP 회원국 전체로 확대해서 우리나라와의 교역현황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RCEP은 그동안 미국, 중국 등에 치우쳐 있는 거래선을 다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또한 직감할 수 있다.

 

 

RCEP은 이와 같이 엄청난 외형을 자랑하고 있다. 많은 난관 속에서 타결된3) RCEP 협정문이 내년 2월 서명을 목표로 후속 조치4)를 남겨놓은 상황으로 큰 이상이 없다면 가까운 미래에 최종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3) 최종 협정문을 작성하여 양측 수석대표가 협정문 최종본에 가서명하는 ‘협상타결’이라는 절차는 있지만 ‘협정문타결’이라는 공식절차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 대표는 방콕 정상회의 결과물인 ‘공동 정상 성명’(Joint Leaders' Statement) 문안 중 ‘have concluded text-based negotiations’를 근거로 ‘협정문 타결’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4) 시장개방 협상 등 잔여 협상을 마무리하고 협정문 법률검토 등을 거쳐 ’2020년 중 정식 서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위기의 한국 경제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보자. 전국경제인연합회 발표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이 작년 동기보다 37.4%나 줄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3.9%와 3.5% 늘었고 일본은 한국보다 감소폭이 작은 22.7%에 그친 것에 비하면 충격적이다. 특히 제조업은 57%나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은 투자할 만한 매력이 없는 셈이다.

 

수출입 실적은 또 어떠한가. 산업통상자원부의 ‘10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7% 줄어든 467억 8000만 달러(통관 기준 잠정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11개월 연속 마이너스이며 11개월째 뒷걸음질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6월부터는 두 자릿수 감소세가 이어진 실적이다. 아직 11, 12월이 남아 있긴 하지만, 2016년 -5.9% 이후 3년 만에 연간 기준 마이너스 수출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수입액도 14.6%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무역규모, 즉 경제규모가 심각하리만치 줄어들었다. 세계 총수출이 1% 준 것을 본다면 상황은 더 엄중하다.

 

또한 중국이 우리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통제하는 한한령(限韓令)이 계속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 로체스터대 이스트먼 음대 오케스트라가 중국 순회공연을 하려고 하자 한국인 단원 3명에 대해서만 공연 비자발급을 거부했다는 뉴스가 대표적 사례다.

 

한 중국 외교 전문가는 언론 매체를 통해 “중국은 사드 보복이란 명분을 이용해서 한류(韓流) 확산을 막고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산업계의 성장을 제한하는 효과까지 얻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일본과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협상의 테이블조차 앉지 않으며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마치 양쪽에서 브레이크 없이 서로 맞달려 오는 기차와 같아 불안하다.

 

냉철한 RCEP의 자가진단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힘들게 공동성명초안까지 마련된 RCEP은 우리의 실질적인 경제위기 돌파구이며 구원투수로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 정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협정문 타결 소식은 한때 지지부진하여 전문가들조차도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발표된 것이라 신선한 바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좀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협상의 결과물이 우리 국민과 기업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RCEP이 우울한 경제 분위기를 반전할 모멘텀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나, 아쉽게도 작금의 현황에서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RCEP 역내시장이 통합되면 한국 기업들의 역내 가치사슬 활용이 확대돼 정부의 신남방 정책이 본격화된다고 한다. 즉, 캄보디아·필리핀에서 원자재를 가져다 베트남에서 가공한 후 다른 아세안 국가에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잘못 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여 이러한 누적조항을 활용한 ‘국내 거점형 비즈니스 모델’이 이미 있으며,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아세안을 포함해 전체를 하나의 경제블록체로 만든 게 RCEP이니 체결국 중 아세안 이외의 국가들과도 누적기준의 최고봉인 ‘완전기준’5)을 활용할 수는 있다. 즉 캄보디아 원자재를 베트남에서 중간 가공 후 이를 중국, 일본 등에서 완성품으로 최종 조립하여 역내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경우에도 RCEP에서 정한 특혜를 누릴 수 있다.

 

5) 참조 : 고태진, 중소기업이 꼭 알고 있어야 할만한 FTA 특례기준, <FTA 무역리포트> 2018-02호(관세청)

 

기존보다 확장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는 좀 더 견고해지고 넓어진 글로벌 가치 사슬과 교역의 다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국내의 여러 경제 정책들이 자사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에 따라 RCEP 회원국 중 어느 한 나라가 한국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지금보다 훨씬 쉽게 제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한창의 화두인 고용창출이라든가 GDP에는 전혀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소비 잠재력이 큰 중위연령('17, UN)이 우리나라(40.8세)의 반절인 인도(26.7세), ASEAN(29.2세)과 같은 울타리에 들어 있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사회이념과 종교가 뒤섞인 국가들을 상대해야만 한다.

 

호주·뉴질랜드와 같은 시장경제체제와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체제가 있는가 하면,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함께 모였고, 힌두교·기독교·불교 국가도 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하나의 경제블록이라지만 사실은 협상 타결의 접점 수준이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

 

1인당GDP 6만 5000달러의 싱가포르와 1300달러에 불과한 미얀마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경제발전의 상대적 격차가 상당한 국가들과의 협정이라 그 유추는 더 타당해 보인다.

 

RCEP의 현실적 활용 가능성 ‘글쎄’

 

협정문이 법률적으로 또 최종적으로 완성되고 공개되어야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여러 정황상 시장의 개방도는 꽤 낮아 보인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RCEP 회원국 모두와 이미 FTA를 체결한 우리로서는 기존 FTA에서 보여준 양허수준보다 높지 않아 현실적으로 활용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양자 간 협상보다 여러 나라와 협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파격적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은 애시 당초 무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아세안 FTA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아세안 10개국과 FTA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10개국이 동시에 만족하는 결과를 찾기 힘들었고, 따라서 그 개방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이후 그보다 더 개방 수준이 높은 FTA가 필요했고 아세안 국가 중 우리의 1, 2위 교역국인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별도의 협상을 진행했다. 이 결과로 베트남과는 2015년 독자 FTA가 발효되었고, 인도네시아와도 2019년 10월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가 실질 타결되었다.

 

차라리 정부는 보도 자료에서 추상적인 내용보다, 대내외적인 여러 이유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자동차와 같은 한국의 주력 수출 생산품에 대해 RCEP이 해줄 수 있는 구체성을 보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즉 RCEP에서 정한 양허세율이 전체 회원국 모두 즉시 철폐된다든지, 유리한 원산지기준을 채택했다든지의 내용을 담았더라면 훨씬 호소력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은 없다. 전자상거래 분야를 새로 만들었다느니 지식재산권 챕터를 도입했다는 등의 얘기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통관 및 무역원활화챕터 등 한-아세안 FTA에 포함되지 않아 신남방정책에 방해가 되고 있다면 한-아세안 FTA를 개정해야할 일이다.

 

한편,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RCEP이 긍정적 역할이 될 수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기술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한-중 FTA를 발효하여 경제블록체를 형성하고 있으나 사드체계에 따른 경제 보복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WTO 지재권 협정(TRIPS) 수준을 상회하는 조항 등을 통해 지재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한편, 높은 수준의 집행 절차를 규정하여 중국내 우리 권리자의 보호를 강화하고 권리 침해 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우리 지재권을 FTA가 충분히 보호해줬는지도 의문이다.

 

이게 현실이다. 오히려 유일하게 FTA를 체결하고 있지 않은 일본과 우회적으로 FTA를 체결한 효과를 보기 때문에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실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 이슈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원소재 산업에 있어 RCEP은 그 의존도를 더 높일 수 있다.

 

RCEP은 분명 우리 경제에 매우 고무적인 일대 사건이며 새로운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국민과 기업을 호도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국민과 기업에 알려야 한다. 모든 일은 그렇게 출발해야 한다. 장밋빛 미래만 보여줬다가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다거나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국민이 목도하게 되었을 때야말로 회복하기 힘든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RCEP은 새로운 경제 환경을 제공해 주는 플랫폼일 뿐이다.

정부와 기업은 처음 겪어 보는 이 메가 플랫폼을 통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전문가를 총동원해 최대한 연구 개발해야 한다. 정부는 그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기업에 적극 제공하고 쓸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한다. 기업도 뉴패러다임인 세계 최대 FTA를 수익 창출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중국, 뉴질랜드와 같이 농업에 강한 나라로부터 수입이 예상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각별히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점점 나빠져 가고 있는 경제 상황을 ‘어찌하면 되겠지’라는 아마추어 시각으로 풀면 안 된다. 촘촘한 대응책이 시급하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관세청 공익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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