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현대 국제무역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다. 과거의 무역이 관세장벽을 낮추어 시장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면, 지금은 복잡다기한 비관세 조치와 규제 준수(Compliance)가 시장 접근성을 결정짓는 결정적 관건으로 작용한다.
그 중심에는 상품의 경제적 국적을 판별하는 원산지규정(Rules of Origin)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GVC)이 고도화되고 메가 FTA가 확산됨에 따라 원산지관리는 이제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선 영역이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 대응이나 ESG 경영 실천을 위한 공급망 투명성 입증의 핵심 수단으로 그 위상이 격상된 까닭이다.
특히 트럼프 2.0 시대를 맞이하여 보복관세와 반덤핑 조치가 일상화된 통상 환경에서 원산지는 기업의 생존과 국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원산지관리 체계는 부처 간 칸막이와 기관 내부의 분절에 가로막혀 수출입 기업들에게 오히려 또 다른 규제 장벽이 되고 있다.
정책·집행의 괴리와 원산지 행정의 분절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무역 강국이지만, 내부의 원산지관리 체계는 여전히 여러 기관에 산재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원산지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정책 및 판정), 관세청(통관 및 심사), 대한상공회의소(상업적 발급)의 3각 구조로 운영된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정책과 집행의 접점에서 해석과 운영 기준의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간극은 기업 입장에서 규제 파편화(Regulatory Fragment)로 체감될 수 있다. 기업이 관련 법령에 따라 원산지표시를 이행했다고 보더라도, 통관 단계의 서류·현품 확인 또는 통관 이후 유통 단계 점검에서 표시의 적정성에 대한 보완·시정 요구가 있을 수 있으며, 고시상 위반유형(미표시·부적정표시·오인표시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또는 형사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기업은 이슈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창구를 찾아 헤매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FTA 혜택을 받으려면 관세청이나 관련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고, 비특혜 원산지판정이나 원산지표시 문제는 산업부나 상공회의소를 찾아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동일한 기관 내부에서도 업무가 조각나 있다는 사실이다. 관세청 내부에서도 ‘특혜 원산지(FTA)’ 관련 검증 부서와 ‘비특혜 원산지표시’ 단속 부서가 이원화되어 운영된다. 이러한 서비스의 분절은 우리 기업이 글로벌 통상 분쟁의 파고를 넘는 데 있어 막대한 기회비용과 행정적 낭비를 초래한다. 원산지표시와 FTA 특혜 원산지기준의 상이함에서 비롯되는 법적 혼란은 오로지 수출 현장의 기업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고 있다.
한국원산지정보원의 한계와 행정 통합의 필연성
물론 현재 관세청 산하에 한국원산지정보원이라는 전문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기구는 원산지 연구, 시스템 관리, 교육 및 컨설팅을 수행하는 지원 기관이자 연구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필자가 제언하는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는 단순한 연구와 정보 제공을 넘어 부처 간에 흩어진 법적 권한을 하나로 통합하고, 정책 결정부터 강력한 행정 집행까지 수행하는 범정부 차원의 전담 행정 기관을 의미한다. 연구 지원이라는 보조적 역할을 넘어선, 강력한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요 교역국들은 통관·검역·무역서류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단일창구(또는 이에 준하는 통합 디지털 플랫폼)를 적극 도입·고도화하고 있다. 중국은 세관 신고와 검사·검역(검역) 관련 신고 항목과 절차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국제무역 단일창구를 통해 통합된 신고·처리를 지원해 행정 부담을 줄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REX(Registered Exporter) 시스템을 통해 특혜무역(Preferential Trade)에서 원산지 자율증명을 운영하기 위한 수출자 등록·관리(등록 DB 운영)를 강화하고, 원산지 신고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싱가포르의 NTP(Networked Trade Platform)는 관세당국과 여러 무역 규제기관, 그리고 무역 밸류체인의 민간 참여자들을 디지털로 연결해 전자문서·데이터 기반의 업무처리(제출·교환·확인)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시간과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한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단일한 디지털 접점(또는 통합된 처리 체계)을 통해 기업의 대정부(B2G) 업무를 간소화하고, 데이터 기반의 표준화·연계를 확대함으로써 행정 비용을 낮추고 제도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전산 시스템의 통합을 넘어, 원산지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집중시킨 범정부 차원의 ‘제3의 전문 행정 기구’를 통한 근본적인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 설립을 위한 3대 전략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적 통찰력과 관세청의 집행력, 그리고 대한상공회의소의 민간 네트워크를 융합한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National Origin Authority, NOA)’ 설립을 제언한다. 이러한 통합 전문 기구는 기업이 어떤 복잡한 원산지 리스크에 직면하더라도 단일한 창구에서 명확한 해법을 얻는 아래의 ‘국가 무역 컨시어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정책과 집행의 일원화를 통한 거버넌스 재정립이 필요하다. 부처별로 흩어진 원산지판정 및 심사 권한을 통합 기구로 집중시켜야 한다. 정책 해석(산업부)과 단속 현장(관세청)의 간극을 없앰으로써 기업은 더 이상 기관 간 해석 차이로 인한 리스크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특히 특혜 원산지판정은 물론, 「대외무역법」에 따른 비특혜 원산지판정과 원산지표시 전담 부서를 하나로 묶어 일관된 법적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전방위 리스크 대응을 위한 통합 솔루션을 제도화해야 한다. 통합 기구는 단순히 서류를 발급하는 곳이 아니다. FTA 특혜는 물론 보복관세, 반덤핑, ESG 공급망 실사 등 모든 원산지 관련 이슈를 통합 진단하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기업이 물품 정보를 들고 오면, 통합 기구가 해당 물품에 얽힌 모든 글로벌 규제 리스크를 한 번에 분석하고 최적의 대응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에게는 기관을 찾아다니는 행정이 아닌, 해결책이 기업을 찾아가는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 국가 보증 체계 구축을 통한 글로벌 신뢰도 제고이다. 통합 기구는 우리 기업의 원산지 정당성을 전 세계에 보증하는 ‘공신력의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 정부 부처 간 결합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외 세관의 검증이나 국제 통상 분쟁 발생 시 국가가 직접 나서서 소명 자료의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부당한 통상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적·기술적 방어막을 쳐주는 강력한 방어 체계로 작동할 것이다.
[표] 현행 체계와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K-SWO1)) 통합 모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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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현행 (부처 및 부서별 산재) |
K-SWO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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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주체 |
산업부, 관세청(특혜·표시 분절), 상의 |
범정부 차원의 통합 전담 행정 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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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 성격 |
연구 및 지원 위주 (원산지정보원 등) |
정책·집행·단속 권한을 보유한 행정 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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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범위 |
FTA 위주의 파편화된 대응 |
국내외 특혜/비특혜 판정(/지원) + 원산지표시 통합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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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응 |
이슈마다 개별 기관·부서 직접 컨택 |
단일 창구를 통한 원스톱 종합 솔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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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원 |
사후적·소극적 소명 지원 중심 |
사전적 리스크 진단 및 국가 공인 보증 |
1) ‘Korea Single Window for Origin’으로서 원산지 업무의 통합 단일 창구를 말한다.
신뢰성 보증자로서의 국가 역할
원산지 단일 창구의 구축과 통합 전문 기구의 설립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선다. 이러한 국가적 인프라의 확충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Made in Korea' 제품에 대한 국가적 신뢰를 설계하고, 기업이 오로지 수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은 부처의 칸막이를 허물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원팀(One-Team)’으로 뭉쳐야 한다.
국가 원산지 전문 기구라는 강력한 인프라는 기업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국가에게는 투명한 감시자가 되어 수출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다. 통상 환경의 대변혁기 속에서 기업을 미로에 가두지 않고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실질적인 역할이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경기TP, 인천TP 등 기관 전문위원
• (전)월드클래스 300, NCS워킹그룹 심의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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