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감독원이 그동안 적법성 논란이 이어졌던 ‘검사 중간결과 발표’ 관행에 원칙적 제동을 걸었다. 검사 완료 이전에는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감독 행정의 기본 틀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공공기관 지정이 조건부로 유보되면서 금감원이 떠안게 된 ‘공공성·투명성 제고’ 요구에 대한 자구책이자, 감독권 행사 방식 전반에 대한 내적 쇄신 신호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9일 발표한 ‘2026년 업무계획’에서 검사·제재 프로세스 전반을 손질하고, 금융회사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감독 권한 행사 과정에서 통제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제도와 운영을 동시에 바꾸겠다는 취지다.
이과 관련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감독행정의 투명성,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감원 스스로의 내적 쇄신을 지속해 나가겠다”며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금감원의 운영과 관련한 내부 경영혁신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부분은 검사 절차다. 앞으로는 검사 완료 전 중간 결과를 외부에 알리는 관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공익적 필요가 명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절차를 마련한다. 관련 기준은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정비할 계획이다.
이는 금융위원회 설치법과 금융기관 검사·제재 관련 규정에 명시된 ‘검사 완료 전 비밀유지 원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검사 과정에서 사실상 제재가 기정사실화되는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검사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도 함께 도입된다. 수시검사 사전 통지기간을 늘리고, 검사 대상자가 검사 부서장에게 의견 청취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권익보호 기준에 명문화한다.
또 담당 검사역이 검사 결과 처리 단계를 시스템에 입력할 경우, 해당 진행 상황이 금융회사에 자동 통지되도록 해 절차의 불투명성을 줄일 방침이다.
제재 프로세스 역시 방향을 바꾼다.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준법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제재를 면제하는 등 자율 시정 기회를 부여하고, 제재 결과는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재공시 시스템을 개선한다.
제재심의위원회 구성도 손질 대상이다. 기존 법조인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학계·연구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위원을 참여시켜 직역 편중을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쇄신안은 지난달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조건부로 유보하면서 제시한 ‘공공성·투명성 제고’ 요구에 대한 후속 조치 성격도 갖는다.
금감원은 기관장 업무추진비 상세 내역을 공개하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을 통한 경영공시도 강화할 계획이다. 공운위는 당시 “형식적 지정 여부보다 금감원 운영 전반의 실질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감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디지털 전환도 병행된다. 금융회사 인·허가 및 등록 업무 전 과정을 전산으로 처리하는 ‘인허가 통합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불공정거래 조사 시스템에는 AI 기술을 접목한다.
이 원장은 “불공정거래 조사시스템에 AI 기술을 새롭게 접목하고 AI 불법정보 감시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빗썸 사고 계기…가상자산 고위험 분야 ‘기획조사’ 착수
이날 업무계획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가상자산 시장 감독 강화다.
금감원은 최근 빗썸에서 발생한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를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취약점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에 대해 “최근 빗썸 사태 등으로 나타난 시스템상 구조적 취약점 해소 등 가상자산 시장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의 효과적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가상자산 시장의 시세조종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고위험 분야를 대상으로 기획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조사 대상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대형 고래’ 시세조종, 거래소 입출금 제한을 악용한 ‘가두리’ 수법, 특정 시점 대량 매집 후 급등을 유도하는 ‘경주마’ 수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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