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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2022 CES의 진정한 주인공 대한민국의 스타트업과 서포터스

(조세금융신문=황성필 변리사) 2년만에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가 라스베가스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오미크론으로 한층 불안 지수가 올라가더니만,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전시회 기간을 5일부터 7일까지로 줄였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도 대거 불참하였고, 미국과의 정치적인 이슈로 중국 기업들의 참여도 상당히 줄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코로나를 뚫고 CES를 다녀온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금번 CES에 대한 분석 기사들은 다양하게 올라온 것 같다. 새로운 기술들의 소개와 같은 유익한 기사도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나, 필자는 젊은 청년들과 서포터스에게 감동을 받은 바가 크기에 이에 대하여 써보려 한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은 유길준이다. 그는 188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유학하며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갑신정변으로 인하여 정부의 지원이 끊어지게 되고,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다. 그 후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고 이후 의사시험에 합격한다. 여성으로서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박에스더이다. 본명은 김점동이나, 남편인 박유산의 성을 나중에 따서 개명하였다.

 

그녀는 1886년 이화학당에 입학한 이후 가족의 반대(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189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선각자였다. 고생 끝에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사 자격증을 받은 후, 1900년 귀국하여 여성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에서 의술을 펼쳤다.

 

남편은 그녀의 졸업을 돕기 위하여 온갖 노동일을 마지 않았다고 하나 안타깝게 미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유길준, 서재필과 박에스더가 미국에 도착하여 유학을 할 때 과연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조선의 정치, 경제 이념과는 상반된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타 문화적 차이, 상상하기 어려운 궁핍함, 그리고 인종적인 차별로 인한 모순들이 그들을 복잡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전”하였고, 이러한 선구자들의 “도전 정신”과 “경험”은 후세에 전해지고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끌어냈다.

 

CES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값진 경험”

 

2022년은 유길준이 미국에서 유학을 시작한지 바야흐로 140년 정도 지난 해이다. 금번 CES에 참여한 대한민국의 기업 수는 약 500여 곳이라고 한다. 미국의 참여 기업들이 약 1300여개라고 하니,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두번째 많은 수로 참여를 한 것이다. CES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일까? 필자는 젊은 스타트업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값진 경험”을 선사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의 지원으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CES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과거에 가난하고 헐벗던 조선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국력으로 진취적이며 열정적인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한번도 와보지 못한 참가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언어가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고작 3일 동안 하루가 다르게 고객들을 접하는 태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살아있는 “교육”의 기회를 우리가 만들어 내고, 이들이 얻은 “경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해주는 것이야말로 “값진 교육”이다.

 

스타트업에는 여전히 높은 해외진출의 벽

 

스타트업은 삼성과 같은 글로벌 초대형 기업과는 전혀 다르다. 조직의 구성에서도 그러하고, 운영방식 그리고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비교할 수가 없다. 스타트업에는 정보도 부재하고, 돈도 없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직원이 많지도 않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누군가의 지원 없이는 아무리 세상을 바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자신있게 선보일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국내에서라면 언어적인 장벽이 없고, 네트워크도 나름 구축해볼 수 있기에 이리저리 뛰다보면 나름 어느 정도 자리는 잡아볼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미국 유학과 당연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와 스타트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삼성과 같은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금번 CES 유레카관은 대한민국의 스타트업들로 가득찼다. KOTRA를 비롯한 KEA(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통합한국관을 부산시, 성남시, 창원시 등과 함께 운영하여 많은 스타트업들의 CES 참여를 독려하였다. 삼성전자는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을 통하여 선발된 스타트업들의 아이템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특히 서울디지털재단이 현지인이 아닌, 대학생들로 서포터스를 구성하였던 것은 가장 박수칠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처음 참여하는 스타트업들의 현장 운영의 노련함에도 우선 놀랐으나, 서울디지털재단의 서포터스들의 영민함과 재치에도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서포터스들은 창업자들이 자리를 비운 순간에도 바이어들에게 기업의 정보와 기술력의 차이에 대하여도 유창하게 설명을 하여, 서포터스를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꽤나 있었다. 짦은 시간 동안 기업의 주요 기술력을 파악하고 이를 전달할 수 있었던 그들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젊은 창업가들이 무엇을 가슴에 남기고 돌아왔을까 궁금하다. 그들이 느낀 점을 또다른 대한민국의 스타트업들에게 전파하여, 더욱 많은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2023년의 CES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 대학생인 서포터스들은 귀국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막힌 아이디어로 몇 년 후 CES에 참여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청년의 가슴이 뛰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프로필] 황성필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

•(현)이엠컨설팅 대표
•(현)LESI YMC Korea Chair

•(현) 연세생활건강, 레페리, 아이스크림키즈, SBSCH 자문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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