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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코로나19 급속 확산에 금융시장도 '공황'…주가↓·환율↑

안전자산인 국고채, 금 값 폭등

국내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24일 주가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의 충격이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27분 현재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0.53포인트(2.34%) 내린 2,112.31을 가리켰다. 지수는 전장보다 48.80포인트(2.26%) 내린 2,114.04로 출발해 하락하고 있다. 장중 한때는 2,104.88까지 내리면서 2,100대로 후퇴하기도 했다.

 

같은 시각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4.17포인트(2.12%) 내린 653.82를 나타냈다. 주말새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전날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상향했다. 코로나19 공포는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9시 21분 현재 전 거래일 종가보다 7.0원 오른 달러당 1,216.2원에 거래되고 있다.

 

6.3원 오른 1,215.5원에서 거래를 시작한 환율은 장 초반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자 안전자산인 국고채와 금 가격은 상승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현재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0bp(1bp=0.01%포인트) 내린 연 1.157%,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4.1bp 내린 연 1.229%에 형성됐다.

 

3년물 금리가 지난 21일 장 마감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연 1.25%)를 밑돈 데 이어 5년물 금리도 장중 기준금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10년물 금리는 연 1.409%로 3.8bp 하락했다. 2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2.9bp 하락, 3.7bp 하락해 연 1.448%, 연 1.450%를 기록 중이다. 국고채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금값도 급등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44분 현재 한국거래소에서 1㎏짜리 금 현물의 1g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65% 오른 6만4천530원에 형성됐다. 이로써 금값은 지난 2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쓴 데 이어 장중 사상 최고가를 다시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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