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임현철 주EU 관세관)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EU 및 WCO 관세관으로 현장에서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해 독자 여러분께 ‘임현철의 유럽관세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나름대로는 유럽의 관세 및 무역 동향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전달해 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시작했지만 얼마나 독자분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의문이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이해가 어려우셨다면 다 저의 부족한 필력을 탓해주시기 바란다. 각설하고 올해 마지막 글인 만큼, 2025년 EU의 상황을 돌아보고 2026년 EU의 모습을 예측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2025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도 EU가 마주한 어려움이 제일 컸던 해인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에 이민·난민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EU 내에서 동유럽과 서유럽의 갈등 등 정말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2025년을 마지막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외에 다른 이슈들은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하고 계속 진행형이다.
특히 2025년도 하반기에 각종 언론에 등장한 유럽의 경제위기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유력 경제지 중 하나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5년 독일의 대중국 적자는 87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87억 유로도 문제지만 더욱더 골치 아픈 것은 87억 유로에서 중소기업과 관련된 적자가 무려 76%인 66억 유로에 이른다는 점이다.
중국이 아직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90년대 독일은 중국에 엄청난 양의 독일 제품을 팔아 큰 이익을 챙긴 바 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자동차, 기계류, 공구(Tool) 등이 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중국에서 독일 제품의 점유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싼 가격으로 무장한 중국 제품이 독일에 물밀듯 밀려들고 있다. 독일뿐 아니라 모든 유럽 국가가 비슷한 상황이다.
여전히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의 과학 기술력은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아무리 독일의 기술력이 좋고 제품의 질이 좋다 하더라도 비교할 수 없이 싼 가격으로 공격하는 중국 제품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이민 난민들과 서민들을 중심으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높다. 벨기에 서민경제는 이미 중국 제품에 완전히 점령되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벨기에를 포함하여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세금에 대한 부담이 크다. 물가도 높은데 세금까지 많기 때문에 다들 생활이 빡빡해서 써야 할 데 돈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문제를 저가의 중국산이 해결해 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지만 현실 앞에서는 우선 싸고 봐야 한다. 통계를 보면 보다 정확하게 보인다.
이코노미스트의 발표에 따르면 25년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에서 미국으로의 수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7퍼센트나 감소했지만 유럽으로의 수출은 오히려 8퍼센트 증가했다.
자동차의 경우, 유럽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20퍼센트지만, 독일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7퍼센트에서 2025년 17퍼센트로 하락했다.
얼마 전 88년 만에 독일 현지 폭스바겐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U가 2035년까지 내연 자동차 판매 계획을 완화하겠다는 결정 역시 전기차 시장에서 유럽이 겪고 있는 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렇다고 EU가 갑자기 제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제품이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재료의 생산과 공급부터 중간 가공, 최종 가공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소위 관련된 전후방 사업이 다들 자리를 잡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른바 제조업 생태계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복잡한 행정절차, 공급자 위주의 시장, 과도한 친환경 정책, 느린 디지털 속도 등으로 인해 제조업 생태계가 붕괴한 유럽에서 제조업을 부활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여기에 같은 EU 회원국이지만 헝가리와 체코 등 동유럽은 공공연히 독일, 프랑스로 대표되는 서유럽 회원국을 비난하면서 여러 규제 정책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자신들이라 강변하면서 EU와 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라는 특수한 체제 아래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한 일률적 통제가 가능하며 거기에다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과 제조업으로 대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유럽 GDP의 70퍼센트는 서비스업에서 나오며 제조업은 단지 16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럽의 경제위기는 과한 평가라는 분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관광, 패션, 요식업 등에서는 유럽을 따라갈 나라가 드물다. 화학, 의약품 분야에서의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유럽이 폐쇄경제가 아닌 이상 GDP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작다고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명품 브랜드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필수 생활용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EU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2024년 9월 ‘EU 경쟁력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유럽의 경쟁력 위기를 진단하면서 ‘EU의 산업 전략’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EU는 2025년 ‘EU 경쟁력 나침반(EU Competitiveness Compass)’이라는 이름의 EU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을 발표함으로써 정체된 EU의 모습을 바꾸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원자재 확보를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 ReSourceEU 이니셔티브 등 자원 안보 정책을 마련하여 EU의 독자적 생존력을 높이려고 시도 중이다.
한편, 외부로부터 EU 시장을 지키기 위한 정책도 발 빠르게 진행 중이다. 빠르면 2026년 7월부터 EU 관세법을 개정, 150유로 면세 한도를 폐지하여 물밀듯 밀려드는 중국산 저가 제품을 막을 예정이다.
탄소국경제도라고 불리는 CBAM도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올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유럽출입국관리시스템인 EES와 짝을 이루어 불법체류, 불법 취업에 대항해 EU 국경을 지킬 EU 전자비자시스템 ETIAS도 2026년 하반기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충 살펴보아도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2026년이다. 하지만 이러한 EU의 계획이 생각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CBAM만 하더라도 EU 내에서 여전히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고, 실제 시행 시 무역 상대국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150유로 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저가 물품이 줄어들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크다.
여기에 종전 이야기가 나오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그 결과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EU의 모든 계획은 물론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미래까지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핵폭탄과 같은 존재다. 준비할 것도 많지만 대비해야 할 것도 적지 않은 2026년을 EU가 어떻게 요리해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프로필] 임현철 관세관
•법학박사(국제법, 서울시립대)
•제47회 행정고시
•외교통상부 2등 서기관
•주불가리아 대사관 영사(경제, 통상, 영사업무)
•관세청 국제협력과장
•국경감시과장
•김포공항세관장
•(현) EU 대표부 관세관
• 저서 : '관세를 알면 EU 시장이 보인다'(박영사)
• 논문 : EU PNR 제도 연구(박사학위 논문)
• 논문 : EU 국경제도(쉥겐 협정)의 두기둥: 통합국경관리와 프론텍스
• 논문 : EU 국경관리 제도 운용을 위한 EU의 입법적 역할 연구
• 논문 : EU 관세법 위반행위에 대한 패널티 규정 부조화(Non-Harmonisation)와 EU의 대응
• 논문 : 트럼프 행정부 관세정책에 대한 EU 대응조치 연구 - EU 권리행사규칙과 경제적강압보호규칙(ACI) 중심으로
• 논문 : 'EU 신이민난민법에 대한 고찰-통합국경관리와 난민정책의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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