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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는 곧 국권"...두모진 수세사건, 한국 근대 세관사 서막 열어

동북아역사재단 박한민 위원, '조일수호조규와 두모진 수세사건' 재조명
관세청 전·현직 전문가들 모여 한국 근대 해관의 역사적 뿌리 논의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한국세관역사연구회(회장 이대복)는 관세발전포럼(회장 김기영)과 공동으로 지난 16일 서울세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관세행정의 뿌리와 미래 성찰’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특히 제3세션 발표를 통해 강화도 조약 이후 발생한 최초의 관세 분쟁인 ‘두모진 수세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 정부의 자주적 관세 주권 수호 노력을 심도 있게 다뤘다.

 

"수년간 면세" 조항의 함정... 두모진에서 터진 갈등
주제 발표에 나선 박한민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1876년 체결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와 그 부속 조약들이 품고 있었던 불평등성을 지적했다. 당시 일본은 "수년간 면세"라는 모호한 규정을 앞세워 부산항을 통한 무관세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878년 9월, 부산 두모진(현재의 수정동 인근)에 관청을 설치하고 조선 상인을 대상으로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두모진 수세사건'이다.

 

박 위원은 "당시 의주 상인들이 부산의 무관세 혜택에 항의하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조선 정부 역시 재정 확보를 위해 더 이상 수세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무력 압박과 조선 관료들의 분투
일본은 조선의 수세 시도를 '조약 위반'이라 주장하며 군함 '히에이함'을 파견하는 등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150명의 수병이 부산에 상륙해 공포탄을 쏘는 등 압박을 가하자, 조선 정부는 결국 3개월 만에 수세를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 위원은 이 사건을 단순한 실패로 보지 않았다. 그는 "비록 무력 앞에 굴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 관료들은 국제 관세 제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했다"며, 이후 김홍집 등이 일본 및 서구 열강과의 협상에서 매우 정교한 관세 초안을 마련하는 등 역동적인 대응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관세 전문가들, "관세 자주권은 경제적 독립의 상징"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관세 분야의 권위자들이 열띤 논의를 펼쳤다.

 

이대복 회장(전 관세청 차장)은 "관세는 곧 국가의 주권"이라며, 당시 조선이 논리와 명분에서는 앞섰음에도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좌절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용득 전 부산세관박물관장(연구회 부회장)은 이 사건을 '개항기 최초의 통상 마찰'로 명명할 것을 제안하며, 일반인들에게도 그 역사적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훈 서울세관 조사국장은 "세관 직원들에게 1878년은 징세의 효시로서 매우 상징적인 해"라며, 두모진 수세사건이 1883년 정식 해관(현재의 세관) 설치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번 세미나는 우리 세관의 역사가 단순히 외부의 강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국제 질서 속에서도 국익을 지키려 했던 조선 관리들과 상인들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싹텄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박한민 위원은 "당시 관료들이 습득한 정보의 양과 대응 속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수준"이라며, 한국 세관사의 뿌리를 더욱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두모진 사건 외에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관세 행정의 변천사를 논의했다.

 

제1세션은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해방 후 역대 정부의 성장정책과 관세정책’을 통해, 관세가 단순한 세입 조달을 넘어 산업 지원과 FTA 대응 등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도구였음을 강조했다.

 

제2세션에서는 민회수 교수(홍익대)와 김민 연구교수(서울대)는 한·중·일 비교사적 관점에서 한국 근대 해관의 창설 기원을 추적하며 학술적 깊이를 더했다.

 

제4세션에서 김재석 교수(서원대)는 1970년대 이후 관세 연구 지식 생태계의 형성 과정을 짚어보며 그간의 학술적 성과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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