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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남도 봄나들이(1) 양춘가절(陽春佳節)

구례 화엄사-순천 웃장-여수 금오도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양춘가절(陽春佳節)

따뜻한 볕 들어 엄동의 기운 몰아내니

비로소 봄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시절도 시작되었다.”

 

화엄사 흑매는 피어나지 아니하고

 

꽃은, 때가 되면 반드시 피어난다. 다만 성급하게 찾은 발걸음과 피어날 때가 안된 매화가 서로 엇박자 났을 뿐이다. 화엄사 계곡은 흑매 뿐만 아니라 산수유를 비롯한 다른 꽃들도 꽃봉오리를 앙다문 채 터트릴 기미조차 없다. 다만 노고단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물줄기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봄이 지척에 있음을 대신 알려준다.

 

 

이렇듯 화엄사 계곡으로 꽃을 찾아 떠난 이른 봄 여행은 먼발치서 마중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피어날 때와 찾는 이의 발걸음이 제때여야 만개한 인연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소함도 연이 닿지 않으면 비껴가거나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 화엄성중(華嚴神衆) 가득한 화엄사 계곡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순천 웃장, 넘쳐나는 인심

 

순천 웃장으로 간다. 순천에는 웃장뿐만 아니라 아래 장도 있다. 짐작했겠지만 웃장은 위쪽에 있는 장, 즉 순천 북쪽에 있는 장이고 아래 장은 순천 남쪽에 있는 장이다. 시장이 그러하듯 순천 웃장에도 시절보다 먼저 봄이 와있다. 할머니들이 파는 좌판의 봄나물들이며 옷가게의 옷들도 화사롭기 그지없다. 순천 웃장에는 여느 시장보다 국밥집이 즐비하다. 웃장에 와서 국밥 맛보지 않은 사람 없을 정도로 웃장 국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밥 골목을 지나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적당한 국밥집으로 향한다. 국밥을 시키니 덤으로 수육 한 접시가 올라온다. 잡내 전혀 없는 수육은 담백하며 고소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주 잔이 오간다. 이어 나온 국밥 역시 그릇이 넘칠 만큼 푸짐하다. 콩나물을 잘 쓰는 전라도 지역답게 순대국밥에도 콩나물이 들어있다. 그래서 국물 역시 여느 순대국밥이나 돼지국밥과는 다르게 시원하다.

 

어쩌면 개운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가게마다 약간의 맛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듯 웃장 국밥은 양도 푸짐하고 덤으로 수육까지 서비스로 내놓으니 국밥 상차림인데도 푸짐하다. “역시 전라도 인심”이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웃장 국밥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상춘객들은 봄을 찾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금오도에는 이미 지천으로 봄이 널브러져 있었다

 

신기항에서 배를 타고 이십여 분, 여객선은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다. 실금처럼 이어진 산허리 구불길을 따라 직포 해변으로 향한다. 산 중턱으로는 동백나무가 푸르르고 비탈밭에는 방풍나물 푸르름이 무성하다. 경사면이 끝나는 곳에는 짙푸른 남해 바다가 이어지고, 해안선을 따라 그림 같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합창이 되어 울려 퍼졌다. 직포 해변에서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길은 서서히 오르막으로 이어지더니 어느새 직벽 벼랑 위로 안내한다. 직포 해변에서 학동마을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금오도 비렁길 제3코스이며 비렁길 구간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구간이기도 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동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산길에는 제철인 동백꽃이 피고 지고 떨어져 나뒹굴기를 산길이 이어지는 내내 반복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비렁다리에서 발걸음을 다시 직포 해변으로 돌린다. 산길을 내려오며 일행들은 방풍나물이며 햇 쪽파 등을 사고, 햇볕 잘 드는 곳에서 갓 올라온 봄 쑥 한 움큼도 채취한다. 여천항으로 돌아와 여객선을 기다리며 난전 같은 횟집에서 멍게에 소주 한잔 곁들이는 여유는 금오도가 주는 덤이다.

 

돌산도에서 맞는 봄 낙조

 

금오도를 나와 돌산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올라간다. 어느덧 해는 수평선을 향해 낙화를 시작한다. 봄빛 잔뜩 머금은 해가 금봉마을 앞바다로 숨어든다. 고즈넉한 선착장 주변으로는 드문드문 날아다니는 갈매기 몇 마리와 일찍 정박한 고깃배 몇 척만 잔물결 따라 일렁일 뿐 인기척조차 없다. 호젓함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금봉마을 해변, 작은 조선소도 장비만 널브러져 있고 길 옆으로는 가리비 패각만 수북할 뿐 그 흔하다는 길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니 떨어지는 해가 더 무심해 보일 수밖에.

 

 

봄, 이라는 계절의 의미를 부여해서일까? 이렇듯 남도의 봄소식은 해마다 습관처럼 돼버린 일상 같은데도 때가 되면 늘 설렘으로 다가와 발걸음을 분주하게 한다. 봄 마중 떠나보시라. 봄 마중은 무턱대고 떠나도 된다. 단, 남쪽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광풍처럼 몰아치는 봄소식을 만끽해 보시기 바란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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