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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시간의 맛, 진안의 새벽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장이 열리는 날이면 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곳은 국밥집이다. 불 켜진 국밥집 안에는 부산한 손길이 분주히 오가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는 수증기가 굴뚝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장터 인근 국밥집들은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에 나선다. 이토록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는 장사도 이유겠지만, 새벽잠 설쳐가며 먼 길을 달려올 장꾼들의 허기를 덜어주려는 배려도 크다. 하루 종일 난전에서 앉을 틈도 없이 손님과 씨름해야 하는 이들에게 속 든든한 한 끼는 버팀목이 된다.

 

그래서 국밥 한 그릇은 그들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힘이었고,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였다. 지금도 장이 서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국밥집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장터가 점점 사라지며 그 수는 급격히 줄었고, 남아 있는 집들조차 장날에만 문을 여는 식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 전반에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시골마을의 고령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했다. 평균 연령이 70대에 접어든 마을도 적지 않다. 머잖아 마을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그 마을을 유지할 동력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예전에는 작은 면 단위 마을에서도 어김없이 5일장이 열렸지만,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5일장은 시골에서 구하기 힘든 생필품을 장꾼들이 들고 와 팔고,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은 수매해 도시로 보내는 물물교환의 장이었다. 그런데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해지자 팔 사람도, 살 사람도 줄어들었고, 결국 장터 기능이 약화되면서 장날 자체가 사라졌다. 장날이 없어지면 자연스레 국밥집도 문을 닫게 되는 순서다.

 

마이산으로 잘 알려진 진안은 평균 고도 400미터를 넘는 고원지대의 전형적인 산골이다. 천 미터에 달하는 산들이 사방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다. 진안에서는 지금도 매월 끝자리 4일과 9일에 공설시장을 포함해 읍내 곳곳에 장이 선다. 그날이면 산골마을 곳곳에서 보자기를 들거나 봇짐을 짊어진 이들이 읍내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 이런 풍경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에는 5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장터 국밥집이 있다. 새로 지은 상설시장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버스터미널 옆에 자리해 있어 장터를 찾는 이들이 자연스레 들르는 곳이다. 따뜻한 곡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북적인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순댓국이다.

 

그 순대는 당면이 아니라 돼지 선지로 만든 피순대가 들어간다. 흔히 분식점에서 볼 수 있는 당면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주얼 또한 낯설어 음식 가림이 있는 사람들은 꺼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 내어 한입 넣고 천천히 곱씹다 보면 고소한 맛에 선입견은 저절로 사라진다. 이렇듯 처음 대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순댓국 외에도 돼지머리 국밥은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메뉴다. 돼지 특유의 냄새 없이 담백하게 우러난 국물은 순댓국이든 돼지머리 국밥이든 한결같다. 이 집만의 비법이 분명하다. 정성스러운 손맛과 변함없는 맛 덕분에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5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켜온 내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헤어져 새벽길을 달려 국밥집에 도착했다.

 

부지런한 이 몇몇은 벌써 대포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주방에선 고기 손질하는 소리와 연기가 바쁘게 어우러진다. 국물 한 수저로 간밤의 숙취를 풀어낸다. 뼈를 우린 뽀얀 국물은 해장뿐 아니라 허기까지 달래준다. 콜라겐과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어 몸에도 이롭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도 순댓국집을 만날 수 있다. 시골마을의 유일한 식당이 대개 백반집이거나 순댓국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순댓국은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다. 워낙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지역별로 쓰는 재료와 국물 내는 방식도 다양하고, 그만큼 집집마다 맛도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 “그 맛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했는데, 홍시맛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시면 곤란하다”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순댓국도 그 집만의 맛이 있다. 자주 가서 먹다 보면 혀끝이 기억한다. 국물 한 수저에 “그래, 이 맛이야” 하고는 속으로 미소 지으면서도, 막상 설명하려면 말문이 막히는 이유다. 바로 ‘그 맛’이기 때문이다.

 

진안 제일식당의 순댓국도 그 집만의 맛이 있다. 그래서 들를 때마다 습관처럼 국물 한 수저로 그 익숙한 맛을 확인한 뒤에야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얹어진다. 바로 추억이다. 노포 식당은 동네 어귀의 커다란 느티나무와 같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처럼, 처음 이 집에 들렀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6~7천 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에 오래된 기억과 마음속 풍경까지 함께 담겨 있다. 그런 소중한 공간이 지금껏 잘 버텨주었듯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진안 둘러보기

 

 

마이산

 

진안고원 중심에 우뚝 솟은 마이산은 백악기 지질 변동으로 솟아난 기암으로, 말의 귀를 닮아 ‘馬耳山’이라 불린다. 사계절이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이 산은 봄엔 벚꽃, 여름엔 녹음, 가을엔 단풍, 겨울엔 잔설이 아름답다. 이곳 계곡에는 이갑룡 처사가 새벽마다 쌓은 돌탑이 수십 개에 이르며,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로움을 지녔다. 마이산 암봉 정상은 진안고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쾌한 장소로, 최근 휴식년제를 마치고 다시 개방되었다. 어린 시절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용담호

 

용담호는 국내 다섯 번째로 큰 인공호수로,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인 진안고원의 물줄기를 가두어 만든 댐이다. 이로 인해 상전‧정천‧안천‧용담이 수몰되며 많은 이들이 고향을 잃었지만, 산세와 호수의 조화는 여전히 아름답다. 유람선 하나 없이 고요한 풍경은 오히려 더 한적한 매력을 주고, 30번 국도와 795번 지방도를 따라 벚꽃 흩날리는 봄과 푸른 숲이 우거진 여름이면 호반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없다.

 

 

운일암반일암(雲日岩半日岩)

 

세속에 지친 마음은 때때로 도피를 꿈꾼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완전한 은둔을 그리는 이라면, 운일암반일암 계곡이 제격이다. 전라도의 강원도라 불릴 만큼 산세가 깊고, 반나절밖에 햇볕이 들지 않아 반일암이라 불린다. 한 번 들어서면 다시 나올 길을 잊게 될 정도로 깊고 굽이진 골짜기, 사방이 무릉도원 같은 풍경이다. 운장산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세월 보내고, 무릉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 나누면 그것으로 족한 삶이 된다. 이토록 깊고 청정한 은신처가 또 있을까.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블로그 | 지구별 여행자 운영자

•스튜디오팝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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