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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미얀마(3) - 미얀마 문화 종교의 중심지 만달레이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대표 부족인 미얀마족이 꼰바웅 왕조 민돈왕 시절에 세운 도시다. 미얀마 고대를 대표하는 왕이자 미얀마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민돈왕은 1857년, 만달레이 언덕에 불교의 설화를 기반으로 도시를 세우고 이곳을 왕조의 수도로 삼는다.

 

하지만 1885년 발발한 미얀마-영국 간의 전쟁에서 패배로 인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되며 만달레이는 왕조시대 최후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하는 등 굴곡진 역사를 겪어온 만달레이는 흉터처럼 지금도 도시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라와디강을 끼고 있는 만달레이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부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200여 년 채 안 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역사공원으로 불릴 만큼 많은 오늘날까지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다.

 

이는 미얀마인들에게 만달레이는 침략자들에 대한 저항의 상징 도시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앙의 중심지로 여겼기 때문에 쿠도도 파고다를 비롯한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고, 지금도 미얀마인들은 이곳을 가장 신성한 순례지 가운데 한곳으로 여긴다.

 

Mahagandhayon kyaung_마하 간다 용 수도원

 

1914년 설립된 마하 간다 용 수도원은 미얀마 최대의 불교 교육기관으로 현재 1500여명의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1000여 명의 스님이 아침 공양을 위해 맨발로 줄지어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날마다 수천 여명의 관광객들이 이곳 수도원을 찾는다.

 

 

 

 

또한 동자승으로부터 노년의 승려까지 경건하게 발우공양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단기 출가 등의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수행자가 이곳의 수도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정통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Mahamuni Pagoda_마하 무니 파고다

 

마하무니 파고다는 양곤의 쉐다곤, 짜익티요의 골든 록 파고다와 더불어 미얀마 불교의 3대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 추앙받는 사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비대해지는 불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각기 소원을 빌며 불상에 순금을 덧붙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하무니 부처상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초기 불상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을 제외하고는 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소원을 빌기 위한 행렬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불상은 점점 더 비대해질 게 분명하다.

 

Mandalay Hill_만달레이 언덕

 

해발 236m의 만달레이 언덕은 올라서면 만달레이 시가지와 그 곁을 흐르는 이라와디강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 언덕을 중심으로 숲 곳곳에 세워져 있는 탑과 사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만달레이 궁전도 내려볼 수 있다. 언덕 정상에는 소원성취를 뜻하는 수타웅피아이(Sutaungpyai) 파고다와 화려한 사원의 극치를 보여주는 쉐야토(Shweyathaw) 사원들이 있고, 특히 일출과 일몰 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Kuthodaw Pagoda_쿠도도 파고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불심(佛心)으로 막아내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것처럼 꼰바웅 왕조의 민돈왕 역시 영국군의 침략을 불심으로 막아내고자 729개의 파고다(불탑)를 만들고 그 안에 대리석에 경전을 새겨 넣은 석장경(돌에 새긴 경판)을 만들었다.

 

 

 

 

이 석장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단단한 대리석 판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새겨 놓은 모습에서 경이로움보다는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간절함이 느껴져 저절로 숙연해진다. 몽골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장장 16년에 걸쳐 만든 우리의 팔만대장경과 결이 같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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