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국제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온스당 5600달러선에 근접했다.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랠리를 단순한 투기적 과열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보다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매수세와 장기 자산 배분 성격의 투자 수요가 뚜렷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달러 약세 전망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금을 비롯한 귀금속 전반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금 현물 가격은 장중 온스당 5591.61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 또한 온스당 119.34달러까지 상승해 연일 신고점을 경신했고, 백금도 2710.20달러까지 오르며 강세 흐름에 동참했다. 팔라듐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금과 은을 중심으로 한 귀금속 시장 전반에 매수세가 유입되는 모습이다.
가격 흐름만 놓고 보면 금과 은 가격 급등에 대해 과열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랠리를 일시적 과열이 아니라 수급 구조 변화의 과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확인된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 신흥국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수가 동시에 작용하며 금값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외교 및 통상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 운용에서 금 비중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흐름이 포착된다. 달러 자산 의존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금이 대안적 선택지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흐름과 맞물려 금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싱가포르계 은행 OCBC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금은 위기나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단기 헤지 자산을 넘어 다양한 거시 환경에서 자산 분산 효과를 제공하는 안정적인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세계금협회(WGC)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금 수요는 5002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투자 수요는 전년 대비 84% 증가한 2175톤으로 집계돼 역대 최대 수준에 달했다. 가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도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 등 장기 자금 수요가 확대되면서, 금의 역할이 단기 가격 변동에 따른 거래 자산을 넘어 중장기 자산 배분 차원의 핵심 자산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은 가격의 급등 요인도 비슷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은의 경우 금과 달리 산업 수요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태양광 패널, 데이터 센터, 전력 인프라 확충 등으로 은 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미국 내 은 재고가 해외로 이동하면서 거래소 재고가 감소한 점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언급했다. 안전자산 수요와 산업 수요가 동시에 맞물린 구조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금과 은 랠리를 투기적 또는 단기적 급등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밥 고틀리브(Bob Gottlieb) 전 금속 트레이더는 금과 은 랠리를 단기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단기 가격 변동에 반응하는 투자자보다, 중앙은행처럼 중장기 관점에서 움직이는 주체들이 수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미국 정책과 외교 행보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비해 자산 방어 차원에서 금 보유를 늘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덤 턴퀴스트(Adam Turnquist) LPL파이낸셜 수석 기술 전략가 역시 현재 상황을 두고 지정학적 갈등이 ‘두더지 잡기처럼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다’고 표현하며, 한 지역의 갈등이 진정되면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긴장이 불거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금 가격에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최근 금값 급등은 단기 투기 수요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고, 중앙은행 매수와 포트폴리오 편입 성격의 투자 수요가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나아가 달러 중심 질서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현재 금값이 고점권에 위치한 만큼 가격 상승 요인과는 별개로 단기 변동성 확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뒤늦게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일수록 향후 조정 국면에서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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