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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한 번쯤 경험해봄 직한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판서를 시켰다. 정성껏 옮겨적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들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주어진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분필을 놓고 자리로 되돌아오는 동안 ‘아이들이 왜 웃었을까?’를 수없이 되뇄다. 의문은 자리에 앉자마자 풀렸다. 써놓은 글씨가 선생님 글씨 크기의 두 배가 넘었다. 얼토당토 않은 글씨였다. 그때 ‘아, 칠판 앞에서 생각한 것과 자리에 와서 본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구나’라며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직업 때문인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좋아한다. 때로는 겸손을, 때로는 희망이 스며든다.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더 쉽게 동화된다. 자폐증에 걸려보지 않고서는 자폐증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배려심을 키우는데도 한몫한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일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경우를 종종 목도한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자녀들과의 상속문제로 다투는 모자지간의 헝클어진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도 학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서도 아니다. 각자의 셈법이 다르다. 그래서 다 억울하고 안타깝단다.

 

대학교수였던 남편과 50년을 넘게 살면서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모셨던 여든의 아내가 있었다.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고, 아들과 사위 모두 남편 못지않은 사회적 지위를 갖추었다. 남편에게 딸은 출가외인이었고, 아들에 대한 선호의식이 유별났다고 한다. 처음 남편과 함께 양도세 상담을 위해 찾아왔을 때는 나이와 다르게 얼굴이며 목소리, 행동거지에서 지고지순한 여성으로 다가왔다. 미팅 중에 아들과의 대화는 평안한 미소로 대신했다.

 

5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남편의 사망으로 상속세 상담차 왔다. 예전보다 더 정정한 것 같기도 하면서, 목소리 톤이 높고 빨랐다. 대화가 거듭될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속재산 이야기를 할 때는 거칠어졌다. 아들에 대한 미덥지 않은 감정은 어느 순간 원망을 넘어 원색에 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달리 드시는 약은 없느냐고 물었다. 치료제 정도의 처방은 받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수백억의 자산가였지만, 50년 넘게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남겨진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의 유언이라며 상속재산의 50%는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아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부딪혔다. 아들에게만 사전 증여한 것은 잘못됐다는 말을 쏟아내며 불만을 격하게 토로했다.

 

오래전 사전증여한 배경과 재산의 현재 시세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한때, 남편 옆에서 조용하게 이야기만 듣고 있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남편의 죽음은 진중했던 그녀를 불안과 불만에 찬 노모로 바꾸어 놓았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응어리진 마음을 다 쓸어내야 그녀의 평안한 미소도 다시 뜰 테다. 지금은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가 급선무다.

 

가끔 유명화가들의 자화상을 볼 때면, 그들의 모습 속에 숨겨진 사연을 찾게 된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 부와 명성을 다 얻었던 20대의 모습에서부터 젊은 날의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외롭고 허망해 보이는 마지막 자화상을 연결하다 보면 한편의 슬픈 모노드라마다. 피카소의 경우는 10대와 20대의 잘생기고 지적인 모습과는 달리 50대 이후는 마치 외계인처럼 다가온다.

 

빈센트 반 고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대로 그려 현실과 뒤바뀐 삶을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의 안타까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변한다. 서서히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무의 나이처럼 속에 숨기고 있어도 각기 고유한 향기와 삶의 자국이 드러난다.

 

링컨은 ‘나이 40이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나이 40이면 부모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로 바꿔 놓고 싶다. 위로받고 싶은 나이가 되어가는 걸까.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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