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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스페인 여행 중에 난생처음 피카소가 그린 해안가의 돛단배 그림을 만난다. 1호 크기의 연필 드로잉 작품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렇게 평안한 그림을 그렸던가’라는 무딘 생각을 했었다. 그 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아비뇽의 처녀들》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최근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조세 물납제도는 부동산과 상장주식만 가능한데 미술품도 추가하자는 것이 골자다. 현행 세법에서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공익법인 등에 출연(기부)하게 되면 해당 재산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문화재등에 대해서는 징수유예도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납세자가 출연하지 않고 물납을 하는 것은 세금과 직결된다. 외국의 경우 상속세가 있는 프랑스, 영국, 일본은 제한적 요건을 두어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피카소 유족의 미술품 물납 덕에 ‘피카소 미술관’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미술품 물납이 도입되면, 거래의 활성화로 국가적으로는 문화부응의 기회, 예술가에게는 문화창작 향상의 기회, 국민에게는 예술의 대중화와 향유라는 긍정적 효과가 뒤따를 것이다.

 

반면, 시장의 특성상 객관적인 가격산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세회피 및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거나 특정분야에 조세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재급의 해외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국보나 보물로 공인된 미술품 등에 한 해 물납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미술품과는 달리 부동산이나 상장주식의 경우는 세법상 시가(보충적 평가)가 있다. 감정평가도 일상적이다. 제3자간 거래가액도 존재한다. 상장주식은 매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어 거래가액(시가) 산정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미술품 시장은 특수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화랑과 옥션(경매시장)을 통한다. 은밀한 거래도 있다. 교환도 있고 임대도 있다. 시장은 대중화와 거래규모 측면에서 여전히 제한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 거래를 형성하거나, 비정상적인 가격이 시가로 둔갑할 수도 있다. 물납의 대상자도 소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부 유명작가의 위작논란도 문제다. 2016년에 알려진 이우환(현존 작가 중에 가장 높은 가액으로 거래되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 위작 사건은 대법원에서 위작범에게 유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작가는 부인했다.

 

천경자 작가의 사례도 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미인도’가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미술관 측이 감정의뢰한 결과는 진품이었다. 법원은 판정불가를 내렸다. 이런 논란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이는 작가와 컬렉터, 감정평가인, 유통채널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된다. 시장에 대한 신뢰와 거래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미술품 물납제도는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미술품 물납제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필요성만큼이나 세심한 검토가 요구된다. 물납대상 요건에 ‘등기된 작품’으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부동산등기법’처럼 ‘미술품등의등기법’의 법제화를 통해서. 거래내용의 등기화로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모든 작품에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 고액 거래 작품, 거래당사자가 원하는 작품 등을 대상으로 한다.

 

역사적 기록물(이동경로 등)과 함께 관리되고 조세회피 개연성도 상당 부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물납제는 소유에서 공유로의 전환이다. 한편으로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에 맞닿은 미술품실명제의 기회다.

 

세제지원과 음성세원 양성화라는 측면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우리에겐 피카소와 같은 훌륭한 작가도 필요하지만, 다수가 공감하는 투명한 세금세상도 필요하다.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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