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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30대 초 대학로에서였다. 어스름한 어둠이 사방에 깔리기 시작할 무렵 친구들과 어울리다 무심코 들어섰다. 기다랗게 늘어선 움막(?) 중에 덜 남루해 보이는 흰 천막을 택했다. 언뜻 희미한 불빛 아래 길게 땋은 머리카락과 함께 인기척이 보였다.

 

4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허름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눈이 매서웠다. 우리들의 시간이 왔다. 나른했다. 개운치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의 사건은 오랫동안 묻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 날 집 식구가 역리원(철학관)을 다녀왔다며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큰놈과 작은놈을 비롯한 가족 사주를 보고 온 것이다. 순간, 30대 때 대학로에서 눈이 매서웠던 긴 머리 선생이 떠올랐다.

 

“당신은 40대 중반에 현 직장을 이직할 운이 들어 있네.”

“네?” “40대가 되면 근무하는 직장에서 큰 변곡점이 생길 거라고” “저는 평생 공직에 있을 건데…….”

 

믿기지 않는 소리에 떨떠름한 기분으로 얼마의 돈을 놓고 나왔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흐른 40대 중반 공직을 이직하고 로펌에 취업한다.

 

사주니 팔자니 하는 말은 믿지 않았다. 무속인들의 이야기는 미신이라고 여겼다. 그랬던 나에게도 믿기지 않는 일들이 생긴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우리 봉이는 나중에 서울 가서 잘 산단다”라며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었다. 팔자가 좋지 않아 ‘웬수 같은 아버지’를 만났다고도 했다.

 

그날은 읍내에 볼일 보러 나간 김에 점을 보고 오셨음이 틀림없다. 가끔 마을로 찾아와 점을 봐주고 곡식 같은 먹거리를 받아 가는 무속인도 있었다. 웅얼거리듯 주술을 읊던 모습은 신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추측이나 공상 보다는 숫자와 결과로 입증되는 현실과학이 더 흥미롭다. 역리원을 내 발로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느 날 집 식구가 가족들 운세를 이야기할 때 “아니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거들다 보면 나도 대충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다”라고 했더니, 살짝 웃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네요. 내 말 못 믿겠으면 당신이 한 번 갔다 와 보든가.”

 

몇 년 前부터 역리원(철학관)을 가끔 찾는다. 한해 운수 정도를 알아본다. 주로 아이들 장래와 가족들 건강 등이 단골 이슈다.

 

몇 해 전 큰놈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하는 대로 가니까.” 심각하게 묻는 나에게 원장선생은 ‘아들 사주에 유학 운이 들어 무조건 원하는 곳으로 간다’며 했던 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 이듬해 큰놈은 본인도 설마설마했던 곳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렇다고 역리원에서의 사주풀이가 다 맞았을 리 만무하다. 맞췄던 한두 가지가 분명하게 기억날 뿐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재무상태표(舊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라는 재무제표를 보면 전반적인 기업상황을 알 수 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람의 운명(사주팔자)을 재무제표에 비유한다면, 재무상태표는 특정 시점의 운의 결과이고, ‘손익계산서’는 평생 사주인 셈이다.

 

즉, 일정기간(一生) 동안의 기쁘고 즐거웠던 일(수익)과 힘들고 슬픈 일(비용), 일상적이지 않은 일(영업외손익) 등을 숫자로 표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전문가라면 기업(재표제표)이든 사람운명(사주팔자)이든 통계를 통해 어느 정도 분석이 가능하겠다싶다.

 

한편, 평생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지만(회계전표에는 빠짐없이 기록됨), 기억 속에 남는 일은 손익계산서 항목 정도다. 어떤 명리학자는 부족한 운(運)을 타고났다면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적선(기부)과 끊임없는 독서(연구)를 권한다.

 

남모르게 선행을 베풀고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쉬울 리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다면 더 참담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현)가천대학교 겸임교수
•(전)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전)중부청 국세심사위원
•(전)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전)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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