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김종봉의 좋은 稅上]예술은 언제나 사기인가?

 

(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김덕용(1961년생, 서울대 회화과) 작가의 ‘결’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화가이면서도 공예적이고 다분히, 시적 표현을 통해 시대적 공감을 끌어내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미술품에 대한 세무상 이슈를 검토하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옥션을 통해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집 서재(어떤 근사한 곳으로 상상하면 보통 낭패가 아니라서, 책상이 있고 책이 조금 꽂혀 있는 정도의 작고 여유로운 공간을 편의상 칭한 것에 불과함)에서 언제나 볼 수 있다. 남서향 고층 아파트인데 외부풍경을 공유할 심산으로 책상은 창을 향해 놓았고, 오른쪽에는 책꽂이가 있다. 왼편 벽에 ‘결’이 있다.

 

소나무를 깎고 다듬은 뒤 단청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사포질을 하여 아련한 추억의 흔적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다양한 작품 중 유독 필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데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원래 예술은 반은 사기이고 속고 속이는 것”이며 “예술은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라고 했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침묵할지도 모른다.

 

거의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냥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품종(?)이었지만 잘 생긴 이쁜 놈이었다. 엄마가 ‘베스’라고 부르자고 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상당히 생소한 강아지 이름이었다. 왜 ‘베스’인지, ‘베스’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몇 차례 물었지만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웃기만 했다.

 

‘베스’는 늘 함께했다. 그 시절의 ‘베프’였다. 놀이 친구이자, 소먹이러 갔을 때는 지킴이였고, 늦은 밤 혼자 있을 때는 세콤이 되어주었고, 외로울 땐 ‘베스’의 내음이 힘이 되었다. 그렇게 ‘베스’와 함께한 시간이 5년 정도 지난 7월의 어느 무더웠던 날로 기억된다. 평소와는 다르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사립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까지도 ‘베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앞 뒷마당과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널빤지, 양철 등으로 얼기설기 만든 ‘베스’의 집이 놓여 있는 장독대 모퉁이에서 낯선 남자와 엄마가 어색한 웃음을 띠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엄마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듯했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무어라 거듭 당부하듯 이야기하고서는 총총히 사라져갔다. 아저씨가 떠난 뒤 엄마에게 ‘베스’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해거름이 다되어 갈 무렵 대청마루에 모여 저녁을 기다리고 있을 때, ‘베스’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사립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순간 부엌에서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오직 ‘베스’만이 보였다.

 

“베스! 베스!”를 부르자 숨이 끊어질 듯 달려들어 사정없이 볼을 핥아대던 ‘베스’는, 슬·펐·다. 커다란 눈망울에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원망의 눈물이 지쳐 보였다. 흙과 땀 먼지에 뒤범벅된 몰골은 또 어떻고. 엄마는 넋을 잃은 사람 같았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엄마의 한숨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활에 쪼들려 당장 융통할 수 있는 재산(?)이 ‘베스’였다. 버스를 타고 25여 리가 넘는 읍내 장터에 가서 개장수에게 넘겼는데 ‘베스’가 사라졌던 것이다. “내일 아침에 ‘베스’를 데려다주고 와야겠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셨다.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길 위에서, 갈래길마다 얼마나 헤맸을까. 버려진 설움과 두려움은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찾아온 ‘베스’는, 엄마와 함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시간을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과 호흡하며 제 그림 속에 관객이 들어와 그 시간을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나무의 결 하나하나에 숨은 기억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게 작가인 저의 몫입니다.” 한 관객을 잊힐 뻔한 소중한 시간의 기억 속으로 안내해준 작가에 경외심마저 든다.

 

이제 ‘베스’는 “결”로 환생하여 내 곁에 있다.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