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맑음동두천 -12.9℃
  • 맑음강릉 -4.5℃
  • 맑음서울 -9.9℃
  • 흐림대전 -8.8℃
  • 맑음대구 -3.7℃
  • 구름많음울산 -2.7℃
  • 구름많음광주 -4.6℃
  • 구름조금부산 -1.4℃
  • 흐림고창 -5.0℃
  • 흐림제주 1.7℃
  • 맑음강화 -11.9℃
  • 흐림보은 -10.5℃
  • 맑음금산 -9.1℃
  • 구름많음강진군 -3.5℃
  • 맑음경주시 -4.1℃
  • -거제 -0.7℃
기상청 제공

국립조세박물관, ‘숙종, 태평성세를 이루다’ 특별전 개관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립조세박물관이 20일부터 ‘숙종, 태평성세(太平聖稅)를 이루다’ 특별전을 개최한다.

 

숙종은 왜란과 호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의 중흥기를 마련한 왕이었다. 선대 현종의 요절로 14세에 왕위에 올라 46년의 재위기간을 보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숙종의 삶을 따라 조선시대의 변화를 살펴본다. 전시관 주제는 모두 7개로 왕으로 태어난 남자, 이순 -개혁을 위한 첫걸음, 왕권 강화 - 왕실 정통성의 확립 - 조세개혁, 조선의 태평을 이루다 - 군역체계 및 강역 정립 - 숙종 이야기 – 메타버스 체험 코너 등이다.

 

주요 전시 유물로는 숙종이 탄생하면서 이름을 정했던 휘망단자, 왕세자 책봉 당시 받았던 왕세자책봉옥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을 비롯, 타고난 정통성으로 숙종의 왕권 의지를 피력한 계붕당시(戒朋黨詩)를 적은 현판, 군주에 대한 신하의 충심을 강조한 제갈무후도(諸葛武侯圖) 등이 있다. 제갈무후는 무향후 제갈량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숙종은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고, 선대 국왕들의 공로를 바로 세우고, 나라 안으로는 안정을 꾀했다.

 

숙종이 선대 국왕들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추승(追陞, 다시 살펴 급을 올리는 일)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정통성을 확고히 한 열성어제, 열성지장통기와 왕실 족보 선원계략기보 등도 전시된다.

 

숙종은 왜란과 호란으로 무너졌던 조선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삶을 살폈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대동법의 전국 시행과 관련된 대동사목, 화폐인 상평통보와 양전(量田)사업에 대한 양전등록 유물이 대표적이이다.

 

양역은 군역이라고 하며, 수탈과 부담이 컸기에 숙종은 군역을 개편했고(국조보감)과 우리나라 강역의 정립을 보여주는 ‘북한지’, ‘울릉도도형’ 등의 유물을 남겼다.

 

숙종은 평균 연령 44세인 조선의 왕 가운데 비교적 장수했다.

 

숙종은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모셔 있는 태조어진(국보 제317호) 영인본과 태조금보를 전시하고, 숙종이 59세 때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그림 기사계첩을 관람할 수 있다.

 

기로소란 나이든 고위관료 등의 예우를 위한 정부 기관으로 원로 고문 들이라고 볼 수 있다.기로소는 왕의 경우 60세, 신하의 경우 정2품 70세 이상이 가입조건이었는데 조선의 왕들은 숙종 때까지 태조를 빼고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태조 이래 숙종 이전 최장수 왕이 56세로 세상을 떠난 중종 정도였다.

 

숙종은 59세 때 종친들과 신하들의 재촉을 받아 기로소에 올랐다. 59세까지 왔는데 미리 경사로 삼아 60세가 되길 기원했다. 숙종은  60세(세는 나이 기준, 만으로는 58세)를 채우고 세상을 떠났다.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숙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옥단춘전’과 애묘인(愛猫人)이었던 숙종의 ‘금묘(金猫) 이야기’ 등도 확인할 수 있다.

 

특별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 확인과 관람 예약은 국립조세박물관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