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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단식(斷食), 배고픔의 고통을 이기는 힘과 경영지혜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모 정치인이 갑작스레 단식을 이어가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역사상 단식은 많은 사례가 있어 왔다. 단식(斷食)은 실타래 같이 이어져 있는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음식공급망을 의식적으로 빠르게 끊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서서히 섭취를 줄이는 절식(節食)과는 다르게 그 배고픔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크고 생물의 본능을 공격하는 것이라 정신과 육체 모두를 원시상태로 되돌리는 극기의 인내를 감수해야만 가능하다.

 

필자에게도 단식경험이 있다. 60년대 우리나라는 전쟁후유증으로 인한 궁핍한 경제로 국민학생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때, 워낙 가난한 사정 때문에 하루에 한 끼도 못 채우고 수돗물로 배 채울 정도로 배고픔을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해 항상 우등생 반열에 올랐던 절친이 있었다.

 

필자는 그 친구의 상황을 공감하기 위해 똑같이 하루에 한 끼로 하며 빈 배를 수돗물로 채우는 과정을 동반 체험해봤다. 결국 3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 배고픔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배고픔을 수돗물로 채우고도 끝끝내 강한 의지로 항상 공부를 잘했던 그 친구를 정말 존경했고 후일 그 친구는 80년대 중동 열사의 대기업 건설회사의 중역으로 국가와 사회에 큰 일익을 담당했다.

 

단식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의 생명을 끊고자하는 단식이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중국의 백이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느니 굶어 죽는 걸 택했고 신라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이 일본에서 죽자 단식으로 망부석의 주인이 됐고, 백제의 성충은 의자왕의 실정으로 백제의 멸망을 보지 않기 위해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한일합방 때는 많은 유림들이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자 하는 단식이다. 이념관철이 목적이다.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 운동가들이 이를 수행해 퍼포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의 간디는 생전 18회, 모두 140여일을 단식해 평화의 이념을 과시했다.

 

셋째, 종교 및 수도의 단식이다. 정신과 도를 깨닫는 도구이다. 종교의 창시자인 예수, 석가, 마호메트 모두가 단식을 하며 참 진리를 깨달았고 지금도 많은 도의 수행자들이 단식을 하며 정신을 훈련시킨다.

 

결국 다른 취지로 단식을 행하지만 그 과정은 당연히 고통과 괴로움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힘은 바로 첫째는 지조와 절개, 둘째는 이념구현, 셋째는 정신수도라는 절대적인 목적달성이라는 강인한 의지력이라 할 수 있다.

 

단식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자신에 대한 폭력, 고통을 자초해 뭔가 이루어내려 함은 지고지순한 최고의 극기행위인 것이다. 오히려 배고픔이라는 그 상태가 주는 많은 이로움과 장점을 필자는 비즈니스에 접목하고 싶다.

 

필자가 예전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방문해 6개월을 체류한 적이 있을 때, 오전 출근시간대의 뉴욕 지하철 입구에서 한 동냥꾼이 팻말을 세우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배고픔의 고통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신 적 있습니까?”

 

나는 이 글귀에 동정과 매력을 느껴 매번 그 자리에 10달라씩 적선했다. 30번째의 계속된 적선에 그 동냥꾼은 나에게 쪽지를 주었고 거기에는 한 빌딩의 사무실 주소가 적혀있었다. 필자는 생경스런 상황 발생에 호기심이 일었고 방문해보았다.

 

그 주소는 어마어마한 대형 펀드회사였고 결국 비서의 안내로 CEO의 룸으로 안내되었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동냥꾼이 CEO였다. 그때 그 CEO의 말이 아직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

 

“나는 배고픈 경험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내 지금의 부를 이루었다. 이 부를 배고픔의 고통을 맛본 사람에게만 투자하고싶다. 배고팠던 자만이 의지력과 힘이 생기고 성공할 수 있게 된다.”

 

기업경영의 성공실패는 CEO의 경영의사 선택에 달려있다. 오로지, 홀로 고독하게 냉정하게 지혜롭게 현명하게 마음을 다스려 모든 대내외 환경, 주변사태를 파악한 후 빠르게 의사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희로애락공우경(喜怒哀樂恐憂驚),

 

즉 기쁘고 노하고, 슬프고, 즐겁고, 우울하고, 놀라는 마음의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이 상태서의 의사결정은 비정상적 사고체계를 유발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요의사 결정 3일 전부터 단식, 절식 등을 통해 배고픔의 경험이 충만할 때 의사결정을 하면 나름대로 좋은 길을 찾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배부름의 포만은 나태함과 오만, 과욕, 괜차니즘의 사고를 발아시킨다.

 

월드컵축구 4강 신화를 이룬 우리나라 감독이었던 거스히딩크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필] 김우일 대우김우일경영연구원 대표/대우 M&A 대표

•(전)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전)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이사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서울고등학교, 연세대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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