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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전두환 정권 때 저질러진 최악의 통폐합시나리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영화 서울의 봄과 고 전두환 대통령의 유해가 국민들의 냉대 속에 안식처를 못 찾고 방황하는 가운데 필자에게는 80년 전두환 정권이 저질러놓은 최악의 산업통폐합조치 시나리오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법정주의다. 무슨 조치이든 정권이 시행하려는 조치는 법적근거를 구비하여야 함에도 이 산업통폐합조치는 사업에 무지한 몇 사람의 군인 머리에서 나온 임시조치에 불과할 뿐인데도 국가 전반적으로 엄청난 회오리를 몰아쳤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미디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당시 대우그룹기획조정실에 근무했기에 그 어이없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어느 날 고 김우중 회장은 필자를 불러 사흘 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최고 국보위위원장인 전두환을 독대하는 자리에 의사결정을 통보할 모종의 전략적 검토를 지시했다.

 

이것은 대우그룹과 현대그룹이 동시에 소유한 중공업과 자동차의 이원화된 산업을 일원화하는 산업통폐합조치였다. 대우는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를 소유했고 현대는 현대양행, 현대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글로벌 경제상황이 오일쇼크로 휘청이던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공업, 자동차산업도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 산업의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국보위 권력자들은 이 상황을 이용, 재벌총수 길들이기로 칼을 빼들었다. 별도의 검토 없이 고 김우중 회장, 고 정주영 회장에게 국보위위원장인 고 전두환 앞에서 양자택일토록 했다.

 

필자는 대우자동차의 원천적 문제점을 고려해 자동차를 포기하고 중공업을 택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다름 아닌 대우자동차는 미국GM과 50대50 합작이어서 경영진도 5대5로 분배되어 경영과 개발에 사사건건 파트너의 간섭과 제동으로 꼼짝달싹 못 하는 곤궁의 상태였다.

 

TERRITORY 조항으로 GM이 진출한 지역에는 수출이 가로막혔고 모델체인지 등 기술개발에는 GM의 사전허가를 받는 등 대우그룹특유의 세계화 전략경영에 애로가 많았다. 50대 50이니 머리가 둘 있는 양두조(兩頭鳥)였다. 같은 한 몸에 취향이 다른 새대가리가 둘이니 굴러가지를 못했다.

 

대신 현대양행은 발전설비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거쳐 비록 현재는 과잉투자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향후 미래수익원인 원전발전설비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대우중공업과 합병한다면 금상첨화의 미래발전이 보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말썽 많은 반쪽짜리 자동차를 포기하고 발전설비기계에 올인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경쟁자인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는 숙명적인 인과관계에 있기에 자동차를 선택할 거로 예상했다.

 

전두환 위원장과 김우중 회장, 정주영 회장, 삼자의 회합에서 말 한마디로 운명이 결정날 순간, 전두환 위원장은 먼저 김우중 회장에게 선수를 주었다. 전두환 위원장은 사실 양자가 합의되지 않으면 어떡하나하는 근심이 있었다. 양자가 동시에 자동차, 혹은 중공업을 택한다면 중간 조절할 여백이 없는 법이다. 재계의 총수를 말 한마디로 억압할 수도 없고 각자의 이해관계, 명분을 무시할 수도 없는 법, 초조했다. 김우중 회장은 중공업을 택했다.

 

다음 순간 정주영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자동차를 택했다. 위원장은 흔쾌한 웃음을 보였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분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 있기에 현대양행을 포기하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하루아침나절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전광석화같이 이루어진 이 통폐합조치에 모든 국민들은 국보위 정권의 무소불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즉시 필자가 속해있는 대우그룹기획조정실 200여명 전원이 마산에 있는 현대양행 사무실로 이전하고 회사명을 현대양행에서 한국중공업으로 고치고 한국중공업기획조정실로 발령났다. 김우중 회장은 한국중공업회장으로 취임하며 모든 대우그룹동력을 한국중공업의 정상화에 걸겠다는 일생일대 포부도 언론에 밝혔다.

 

현장에서 본 현대양행의 모습은 거대한 넓은 공장부지위에 빈사상태의 공룡 수백마리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조용한 무덤자리 같았다. 180만평의 광활한 토지 위에 세워진 수십 개의 공장 안에 거대한 수백 개의 발전설비 및 부품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 몇 개월만에 대우그룹은 180억원이라는 운용자금이 투입됐고 추가 정상화자금이 2000억원이나 더 필요했다.

 

반면 자동차를 인수한 현대는 부평에 있는 대우자동차를 현장실사도 못했다. 바로 50% 주인인 미국GM의 반발이 있었고 GM은 바로 미국백악관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이 GM이고 GM이 미국이었다. 최종권력을 못 잡은 정두환 정권은 내심 미국 정부의 견제를 두려워하는 마당에 괜시리 미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소 외양간을 고치려다 소를 잃는 우를 범할 수가 있었다.

 

마산으로 가는 어느 아침, 고속버스 안에는 기획조정실멤버 30여명이 타고 있었다. 주말에 귀경해 일요저녁에 내려가는 길이다. 그때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 속에 깜짝 놀랄 라디오뉴스가 귀를 때렸다.

 

바로 국보위에서 대우와 현대의 산업통폐합조치를 무효화한다는 발표였다. 모두가 패닉상태였다. 우리 팀은 이대로 마산으로 가야하나 거꾸로 대우본사로 가야하나 갈피를 못 잡았다. 휴게소에 내려 김우중 회장과 통화를 했으나 회장도 처음 듣는 얘기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런 중대한 시책을 법적 근거 없이 한두 사람의 군인머리로 사전통고도 없이 시행하고 또 사전통고도 없이 무효화하니 이 꼭두각시 놀음에 휘둘린 두 그룹은 막대한 경비만 축낸 셈이었다.

 

40여 년 전 군부시대 때 이뤄진 일련의 작태를 보고, 우리 기업인들은 과잉투자, 중복투자를 스스로 예방하고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 앞으로 정치권력에 빌미를 주어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필자는 더욱 강조하고 싶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필] 김우일 대우김우일경영연구원 대표/대우 M&A 대표

•(전)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전)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이사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서울고등학교, 연세대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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