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2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6℃
기상청 제공

정치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새 관료들이 경청해야 할 처칠과 경찰관 이야기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오로지 검찰업무에만 몸 담아온 새 대통령이 출범하며 이에 따른 새로운 내각들의 진용이 짜여졌다. 더구나 거의 50대 50의 저울추에서 가까스로 탄생된 정권이라 지지도의 저울추가 반대로 기웃거리며 국민의 시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정치권의 밀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인이 아니라 검찰관료로서만 지내온 평생 이력은 그를 둘러싼 국정경험의 결핍을 메워줄 인력의 부족함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인재풀에서 국정철학을 공유할 동반자를 찾다보면 엉뚱하게 화살이 빗나갈 경우가 많을 것이다.

 

새 정권이 앞에 내세운 모토는 원칙과 공정함이다. 어느 누구도 원칙을 지키며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공명정대한 세상을 주창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이 공명정대함이 조금이라도 빛을 바래면 중국천추전국시대의 순자가 말한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즉 군주가 배라면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그 물이 노하면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정권의 관료로 임명되어 권력의 노를 저어야 하는 이들에게 필자는 영국처칠과 한 경찰관이 남긴 스토리를 각인시켜드리고 싶다.

 

이 얘기는 모든 사람에게 다소 많이 회자되어온 얘기지만 다시 한번 공정에 모토를 둔 새로운 권력자들이 자나 깨나 음미해 맡은 권리와 의무를 거짓됨이 없이 바르게 사용하며 온 국민들의 공정 실현에 최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국 런던 거리에서 순찰 중인 한 경찰관이 고급자동차 한 대가 빠르게 신호를 위반하며 달리는 것을 목격했다. 경찰관은 당연히 그 차를 길가에 세우고 교통범칙금을 발부하려 면허증을 운전자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면허증을 내놓기보다는 뒷좌석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경찰관에게 뒷좌석을 보라고 고개로 신호를 보냈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영국 총리인 처칠이었다. 처칠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경찰관에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네. 나는 영국 총리 처칠이네. 내가 지금 바쁜 국정회의가 있어 운전기사에게 신호를 무시하고 빨리 달리라고 지시했네. 지금 정말로 급한 상황이니 한번만 봐주면 안되겠나?”

하지만 경찰관은 뒷좌석에 앉은 처칠을 보더니 “당신은 처칠 영국 총리일 리가 없습니다.”

 

“아니? 무슨 소리? 내 얼굴을 봐요, 처칠이라고.” “당신 얼굴은 처칠이요. 그러나 정신은 처칠이 아니요. 교통법규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영국의 총리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신호위반 스티커를 발부했다. 처칠은 나중에 경찰국장에게 전화해 공정한 공무의 대가로 해당경찰관에게 1계급특진을 시키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그 경찰국장은 “제대로 된 법을 당연히 집행한 자에 대해 그동안 특진시켜준 예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후일담에는 그 경찰관이 산모나 어려운 처지의 위급한 사람에게는 스티커를 발부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는 원칙과 공정함이란 무조건적인 잣대로 운용 적용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가변성이 더 원칙과 공정함이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권력자들은 더욱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며 가변적인 공정함에 키를 두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필] 김우일 대우김우일경영연구원 대표/대우 M&A 대표

•(전)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전)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이사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서울고등학교, 연세대 법학과 졸업

관련기사






네티즌 의견 0

스팸방지
0/300자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 칼럼] 젊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라고 해서야
(조세금융신문=손영남 편집국 부국장) 식당이나 술집 계산대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일상과도 같다. 서로 내겠다며 다툼 아닌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야말로 그간의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달까. 주머니의 가벼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대범함(?)은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론 그런 훈훈한 광경을 보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다. 요즘의 젊은 친구들, 그러니까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층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먹지도 않은 것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이 MZ세대다. 누구보다 실리에 민감한 세대인 탓이다. 그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게 더 합리적인 일인 까닭이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낸다는 데 누가 뭐랄까. 근데 그게 아니라면 어떨까. 바꿔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이 먹은 것까지 자기가 내야 한다면 그 상황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그게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금의 연금 개혁안을 두고 MZ세대들이 불만을 토하고 있는 현 상황이 딱 그 꼴이다. 어렵게 번 돈을 노후를 위해 미리 쟁여둔다는 것이 연금의 기본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