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요즘 드라마 모범택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복수 대행 서비스’라는 설정은 단순한 극적 장치를 넘어, 약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비춘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나 삶을 살다 보면 “정말 저런 서비스가 있다면 한 번쯤 이용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약자를 대신해 억울함을 풀어주는 대리정의의 서사가 주는 해방감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한강대교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물체를 발견한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모두가 무심히 지나친다.
결국 그는 “둔해 빠진 것들”이라고 꾸짖는다. 위험 신호를 외면하고, 불의와 부정행위를 관성적으로 넘기는 사회의 무감각을 감독은 이 한마디에 응축해 던진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관세행정에서도 낯설지 않다. 충분한 재산이 있음에도 이를 고의로 숨기거나 타인의 명의로 이전해 납세 의무를 회피하는 일, 그리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성실납세자에게 전가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다.
악성 체납은 단순한 미납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조세 정의의 근간을 흔든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세행정의 ‘모범택시’, 즉 과감하고 정밀하며 흔들림 없는 기획 추적 역량이다. 서울세관의 체납125추적팀은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재산 은닉이 의심되는 고액·악성 체납자를 전담해 촘촘하게 추적하고, 필요한 경우 사해행위 취소소송도 주저하지 않는다.
서울세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상속지분 포기 방식으로 체납처분을 회피한 체납자 A씨에 대해 이 팀이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한 경험이 있다. 수억 원의 재산을 갖고도 갖은 편법으로 납세를 피한 얌체 체납자를 법의 심판대로 이끈 상징적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악성 체납에는 더욱 단호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성실 납세자를 보호하고 조세 정의를 지키는 일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력한 법 집행과 사회적 감시, 그리고 공동체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한 가치다.
한편, 국경 현장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관세 모범택시’가 쉼 없이 움직인다. 밤이 깊어 가는 공항 세관 검색대에는 특유의 긴장감이 흐른다.
불법 총기나 마약을 숨겨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검색대가 아니라 곧바로 법의 심판대가 된다.
올해 출범한 경제국경 민생범죄 대응본부는 총기·마약과 같은 국민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전방위 단속 체계를 구축했다.
통관검사, 수사, 위험 정보 분석, 유통 단계 단속이 하나로 연결된 촘촘한 시스템이다. 성과도 뚜렷하다.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경을 지키는 이들은 말 그대로 ‘국민 안전의 모범택시’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이 차량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도 또 다른 관세 모범택시가 뛰고 있다. 바로 해외통관애로센터다. 드라마 속 모범택시가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듯, 해외통관애로센터는 국제 통상 현장에서 억울한 우리 기업을 위해 가장 먼저 출동하는 해결사다.
최근 삼성전자가 인도 관세 당국과 얽혔던 대규모 관세 분쟁이 대표적이다. 인도 측은 기지국용 부품인 RU(Radio Unit)를 ‘통신기기’로 분류해 약 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 했다.
단순한 품목분류 문제처럼 보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때 관세청이 중심이 되어 외교부와 긴밀히 협업했고, 결국 세계관세기구(WCO)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해당 부품을 ‘0% 관세 품목’으로 분류한다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인도 측이 제기한 관세 회피 의혹도 사실상 해소되면서 분쟁은 일단락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기업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뛰는 관세청의 국제 문제 해결 역량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처럼 관세청 곳곳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모범택시’가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악성 체납자를 기획 추적해 조세 정의를 세우고, 국경에서는 총기·마약을 막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며, 해외에서는 우리 기업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국제 통상 해결사로 활약한다.
드라마 속 모범택시는 현실의 상처를 위로하는 상징이지만, 관세청의 모범택시는 오늘도 실제 국경에서, 현장에서, 국제무대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공동체의 정의를 지켜내고 있다. 국민이 잠든 시간에도 달리는 관세 모범택시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분명 더 안전하고, 더 공정하며, 더 든든해질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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