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세계 경제는 보이지 않는 해상로와 공급망 위에서 움직인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처럼 보이는 항로 하나가 국제 에너지 시장과 물류 흐름을 좌우하고, 때로는 산업과 물가의 방향까지 바꾸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에는 해상 교통로의 작은 변화도 시장 전체에 예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이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지 않은 해협이지만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해상 통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중동 주요 산유국에서 생산된 원유가 이곳을 지나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세계 각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의 신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번성했던 무역 왕국의 이름이기도 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동서 교역의 길목으로 기능해 왔다. 오늘날에도 이 이름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를 상징하는 지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은 지금도 국제 경제의 중요한 연결 지점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에너지와 해상 물류가 촘촘하게 연결된 환경에서는 항로의 변화나 운송 불확실성 만으로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에너지 자원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제 공급망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유와 LNG와 같은 에너지 자원은 산업 생산과 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인 만큼 안정적인 수급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 권고 기준을 충분히 웃도는 수준의 석유 비축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에너지 수급 구조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또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국내 시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 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면 단기간의 국제 가격 변동이 곧바로 국내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때에는 일부 업종에서 가격 상승 기대를 이유로 과도한 인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석유류와 같이 국민 생활과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시장 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국제 가격 변동과 무관하게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작동해야 하며 기업의 가격 결정 역시 시장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을 이용한 매점매석이나 담합, 또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훼손하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시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관계 부처 합동 점검을 통해 가격 동향과 유통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석유관리원과 경찰, 지방 자치단체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하여 유통 질서 교란 행위가 있는지 점검을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시장의 자유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공정한 질서 역시 함께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동상황 비상대응 전담조직(T/F)」을 구성하고, 중동 정세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을 대상으로 관세 납부 및 환급 등 세정지원과 수출입 물류 통관 지원을 신속히 시행할 예정이다.
수출 측면에서는 중동으로 향하는 수출 물품이나 중동을 경유하는 수출 물품이 국내에서 출발하지 못하거나, 출발했더라도 현지에 입항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이른바 ‘유턴 화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관세청은 24시간 통관 지원 체계를 가동하여 유턴 화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고, 재수입 시 면세 적용도 허용할 방침이다.
또한 수출신고 이후 중동 지역으로 선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현재 30일로 정해진 수출이행기간(수출신고 후 적재기간)의 연장을 적극 승인할 계획이다.
아울러 중동 상황과 관련하여 수출신고 정정이나 취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오류점수와 법규준수도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면책 특례를 적용할 예정이다.
대(對)중동 수출기업의 경우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해 대금을 수령하지 못하면서 자금 경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고려하여 관세청은 수출 환급 신청에 대해서는 당일 즉시 처리 원칙을 적용하여 기업의 유동성 확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수입 측면에서는 운송비 등 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중동 지역 수입기업을 대상으로 납기 연장, 분할납부, 관세조사 유예 등 종합적인 세정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 곤란으로 우회 항로나 대체 운송편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운송비 상승분을 과세가격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관세청은 원유, 액화천연가스 (LNG) 등 주요 에너지 품목과 경제 안보 관련 품목에 대해 수입량과 수입단가를 기반으로 공급망 상황을 상시 점검하고, 그 결과를 관계 부처와 공유할 예정이다.
관세청의 환급 등 세정지원과 수출입 물류 통관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전국 6개 본부·직할세관 수출입기업지원센터에 설치된 ‘중동 상황 피해기업 접수창구’를 통해 확인하거나 문의할 수 있다.
최근 전국 세관에서는 중동 상황의 영향을 받아 수출신고를 취하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하기 시작했다. 관세청은 중동 정세 변화로 인한 우리 기업의 수출입 애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통관과 세정 전반에서 필요한 지원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세계 경제는 수많은 해상로와 공급망을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도 위에서는 작은 해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길을 따라 에너지와 물자가 흐르고 산업과 시장이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가져오는 불확실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공급망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고 시장 질서를 지키는 노력이 함께할 때 국제 환경의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충분히 관리 가능한 변수로 남게 된다.
결국 안정된 시장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장 참여자 모두의 책임 있는 선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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