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윷놀이는 막판까지 승부를 알 수 없어 더욱 흥미롭다.
그러나 재미있는 윷놀이가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분명히 정해 두어야 한다.
규칙이 모호하면 중요한 순간마다 해석이 엇갈리고, 결국 즐거운 놀이가 다툼으로 번지기 쉽다.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경쟁이 활력을 만들어 내지만, 그 자유는 정해진 규칙 위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규칙이 없는 자유는 경쟁이 아니라 혼란에 가깝다. 독과점과 담합은 바로 이러한 시장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겉으로는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의 공정한 흐름을 왜곡하고 소비자와 경제 전체에 부담을 떠넘긴다. 자유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같은 규칙을 따르고, 그 규칙이 공정하게 지켜져야 한다.
올해는 'The Wealth of Nations'이 출간된 지 정확히 250년이 되는 해다. 1776년 세상에 나온 이 책은 흔히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이자 경제학의 고전으로 불린다.
같은 해 북아메리카에서는 독립선언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정치 질서가 태동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흐름이 시작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해였다는 점에서 1776년은 현대 세계 질서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Adam Smith가 '국부론'에서 강조한 핵심은 분명하다. 바로 분업과 자유무역이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분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국가 간에는 자유로운 교역이 이루어질 때 사회 전체의 부가 확대된다고 보았다.
시장은 수많은 개인의 선택과 거래가 모여 형성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균형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러한 시장의 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분업과 교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스미스는 유명한 ‘핀 공장’의 사례를 들었다.
한 사람이 핀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공정을 나누어 맡을 때 생산량이 훨씬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와도 닮아 있다. 세계 경제는 각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에 집중하고, 서로 교역하면서 성장하는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의 세계 경제를 바라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가장 먼저 자유무역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최근 국제 경제에서는 보호무역의 흐름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관세 인상과 무역 규제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분업과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효율을 높이자는 스미스의 생각은 이러한 관세 장벽 앞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부론'을 단순히 자유시장만을 강조한 책으로 이해하는 것은 스미스의 사상을 절반만 보는 것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스미스를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경제의 설계자’로 기억하지만, 그의 사상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더 있다.
시장은 도덕과 신뢰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국부론'보다 먼저 출간된 그의 또 다른 저서인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공감(sympath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도덕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은 '국부론'의 시장경제 논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스미스가 상정한 시장은 무조건적인 탐욕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규칙을 지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체계였다.
상인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이 사회 전체의 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기업의 담합과 독점에 대해 매우 강한 경계를 보였다.
그는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모이면 결국 소비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쟁이 사라지면 가격은 왜곡되고 시장의 효율성도 사라진다. 이익 추구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경쟁을 파괴하는 행동은 사회 전체의 부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스미스가 생각했던 자본은 단순한 돈의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와 규칙, 그리고 도덕적 절제 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에너지에 가깝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면 ‘윤리적 자본’ 또는 ‘따뜻한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념이다.
시장경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계약을 지키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경쟁이 공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기업 또한 사회 속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반이 무너지면 시장은 효율을 만들어내는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독점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구조로 변질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정 경쟁, ESG 경영과 같은 개념들이 강조되는 것도 결국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신뢰의 기반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새로운 개념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이미 250년 전 스미스의 사상 속에 담겨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조차 '국부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경우는 많지 않다. 시대적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장의 자율성, 자유무역의 중요성, 그리고 담합과 독점에 대한 경계라는 세 가지 메시지는 오늘의 세계 경제에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250년 전 한 권의 책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장은 어디까지 자유로워야 하는가. 정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쟁이 사라진 시장은 과연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어쩌면 '국부론' 250주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단순한 이익 계산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유로운 경쟁과 교역이 중요하지만, 그 자유는 신뢰와 도덕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시장을 지탱하는 힘은 차가운 계산만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와 책임,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함께 작동할 때 시장은 비로소 사회 전체의 부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스미스가 남긴 경제학의 유산은 단순한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따뜻한 자본’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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