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은행

‘먹통 사태’ 겪은 카뱅, 비상대응반 꾸린다…“팀장급 IT전문가 투입”

화재 및 재해 등 내외부 각종 비상사태 신속 대응 차원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데이터센터 화재로 ‘먹통 사태’를 겪은 카카오뱅크가 비상대응특별점검반을 꾸리고 고객 자산과 데이터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25일 카카오뱅크는 비상대응특별점검반을 꾸린다고 밝혔다.

 

비상대응특별점검반은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위원장을 맡아 재해대응의 신속한 판단 및 의사결정을 돕는 위기상황대책본부 내 신설되는 조직이다. 화재 및 재해 등 내외부 각종 비상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조직됐다.

 

CIO 직속 조직으로 카카오뱅크 내 팀장급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문성을 높였다.

 

카카오뱅크는 이번 비상대응특별점검반 신설을 통해 카카오뱅크 데이터센터 및 앱의 비상 상황뿐 아니라 카카오톡 등 외부 연계 서비스의 오류로 인한 비상 상황에도 고객의 자산과 데이터를 완벽히 보호하고,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카카오뱅크는 이번 비상대응특별점검반 구축 이전에도 주기적인 ‘IT위기대응 훈련’ ‘전자금융사고 대비 모의 훈련’ 등의 노력을 해왔다. 폭우, 홍수, 지진, 화재 등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매해 서울 상암 소재 주 전산센터에서 경기 성남 소재 야탑 재해복구(DR)센터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또 데이터센터를 3원화해 각종 비상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 상암 센터를 주 전산센터로, 경기도 성남시 센터는 재난복구(DR)센터, 부산 강서구 센터를 백업센터로 두고 있다.

 

서울 상암 전산센터에 이상이 생길 경우 경기 성남 소재 센터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서비스를 이어가게 되며, 부산에 위치한 백업센터에서는 금융권 최초로 고객의 금융거래정보를 실시간으로 복제, 보관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고객의 데이터는 부산 백업센터에 안전히 남아있게 되는 셈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최근 서비스 장애로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한 마음”이라며 “비상대응특별점검반 구성을 계기로 각종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강화, 고객의 자산과 데이터를 안전히 보관하고 서비스의 연속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