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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클래식&차한잔] 브람스 인터메조(Intermezzo)

op.182, No.2 A major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아름답다, 슬프다, 우아하다…

이 곡은 브람스의 애틋하고 마음 저린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금기된 사랑 노래입니다.

청년 브람스는 20세에 14살 연상인, 스승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 운명적으로 만나서 43년을 이어간 외사랑, 음악계에서 이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클라라에게 보낸편지 中)

 

당시에 이미 촉망받는 여류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그녀의 남편 슈만, 그리고 슈만의 제자인 브람스의 운명같은 사랑.

 

이 질긴 운명의 고리 안에서 셋은 독일 낭만 음악의 동지로서 서로 지지하고 교감하며 예술혼을 불태웠습니다.

 

후에 슈만이 자살기도를 하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평생을 클라라 옆에서 보필하며 옆을 지키다가 60세의 어느 때에 74세인 클라라에게 이 6곡의 인터메조를 헌정합니다.

 

마치 보물처럼 애틋하고 귀한 마음을 곡의 중간중간에 담아놓고 이제라도 부디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닿기를 기원하지요.

 

평생을 마음 열어 브람스를 받아 들여주지 않던 클라라가 죽기 전 브람스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를 위해 연주해 주었던 곡이 바로 인터메조 OP.118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야 비로소 그의 음악을 연주해 화답하며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사랑 그 이상, 고마움과 존경임을 알고 그는 무척 감격해했다고 합니다.

 

후에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브람스도 1년 후 그녀의 뒤를 따라갑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클라라가 죽은 후 브람스의 글)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

 

이 곡의 ‘Andante teneramente’는 ‘느리고 애정을 가지고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포르테는 강하지만 강하지 않은, 끓어 벅차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는 강함이 아니고, 타오르는 마음을 애써 절제하며 호소하는 듯한 포르테로 표현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연주자가 브람스의 마음에 그대로 빙의가 된다면 아마 자연히 그리 느끼며 연주가 되겠지요.

 

브람스의 인터메조 중에 가장 유명한 이 곡은 보기엔 쉬워보이나 그대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이 연주자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도시레~’로 시작하는 그 짧은 주제는 주성부에서도, 내성에서도, 베이스에서도, 심지어는 전위를 하여 ‘도레시~’로도 보여주며 중간중간 드러나니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며 곡을 끌어가는 것이 연주자에게 고도의 감성을 필요로 합니다.

 

브람스처럼 60대는 되어야 그 감정이 충분히 무르익어 자연스럽게 연주되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젊은 연주자보다는 노년의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감동이 더 되더라는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요하네스의 ‘인터메조’ 듣기

 

[프로필] 김지연

•이레피아노학원/레위음악학원 원장

•음악심리상담사
•한국생활음악협회 수석교육이사

•음악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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