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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클래식&차한잔] 메르카단테 플룻협주곡 No.2 E단조 op.57

Mercadante Flute Concerto No.2 in E minor op.57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들으면 즐거워지는 플룻협주곡 한 곡 소개해 드립니다.

 

작곡가 메르카단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19세기 당시에는 작곡가 베르디(Verdi)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 이탈리아의 중요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해 드리는 이 곡은 오페라의 대가, 메르카단테의 플룻협주곡입니다.

 

경쾌한 매력 발산 플룻협주곡 2번

 

이 곡은 그가 학생이었던 1813년에 작곡되었습니다. 빈 고전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세 악장 중에서도 특히 론도(Rondo)형식인 3악장의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주제 멜로디는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합니다. 붓점의 경쾌함과 통통 튀는 예쁜 선율의 매력으로 각종 광고와 시그널 음악으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작곡가 메르카단테

 

메르카단테는 나폴리의 음악원에서 기악을 시작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오페라의 작곡에 몰입하여 무려 60여편의 오페라작품을 작곡하여 명성을 날렸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30년 동안 나폴리음악원의 원장으로서 일을 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도 힘을 썼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주로 오페라 작곡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그의 이름을 가장 알려주는 곡은 바로 이 플룻협주곡 2번입니다.

 

물론 ‘메르카단테’라는 음악가에 대해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그의 이름은 이 플룻협주곡과 함께 가장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메르카단테의 이 곡은 멜로디가 아름답고 난이도도 적당하여 학생들의 플룻 콩쿨에서도 경연곡이나 입시곡으로도 자주 선정되고 있는 곡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사후에서야 재조명되어 인정받으면서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르카단테는 그의 전성기에 그를 빛내주던 수십 개의 오페라 작품보다는 학생시절의 습작이었던 이 플룻협주곡으로 현재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던 오페라 작품들도 조용히 사라졌지만, 어쨌든 이 플룻협주곡 한 곡만 봐도 그의 음악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그를 빛내던 것들이 그의 사라짐과 동시에 같이 사그러들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씁쓸하기도 합니다.

 

마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우리네 인생 같기도 하네요.

메르카단테의 오페라는 아니지만 그의 젊은 음악을 엿볼 수 있는 습작, 플룻협주곡 2번 감상하시겠습니다.

 

‘메르카단테 플룻협주곡 2번’ 듣기

 

[프로필] 김지연

•(현)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현)이레피아노원장

•(현)레위음악학원장

•(현)음악심리상담사

•(현)한국생활음악협회수석교육이사

•(현)아이러브뮤직고양시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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