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토)

  • 맑음동두천 26.1℃
  • 구름많음강릉 23.5℃
  • 박무서울 27.2℃
  • 구름많음대전 26.2℃
  • 박무대구 23.7℃
  • 박무울산 24.6℃
  • 박무광주 25.9℃
  • 구름조금부산 26.7℃
  • 구름많음고창 25.8℃
  • 박무제주 24.4℃
  • 구름조금강화 23.9℃
  • 맑음보은 25.7℃
  • 구름많음금산 23.9℃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9℃
  • 흐림거제 24.9℃
기상청 제공

[인터뷰] 창립 50주년 부자(父子) 합동 남서울관세사무소 홍영선 관세사

믿음으로 다져온 50년, 혁신과 도약의 100년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국내 최초의 부자(父子) 합동 관세사무소인 남서울관세사무소가 지난 5월 12일 하버파크호텔에서 창립 50주년 행사를 열고 혁신과 도약의 100년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는 특히 장시화·이용철·이영희·김용우·이상태·손종운 씨 등 남서울 창업 멤버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현재 남서울관세사무소를 이끄는 홍영선 대표관세사는 이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남서울관세사무소의 50주년은 관세사회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뜻깊은 기록이자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전·현직 남서울 식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다져온 남서울관세사무소의 50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혁신과 도약의 100년을 다짐합니다”라고 전했다.

 

기념식에는 이승남 국가원로회의 정책위원 겸 KBS 前 국장도 참석해 “지금까지 믿음으로 50년을 지켜온 만큼 앞으로 100년도 믿음으로, 튼튼하게 성장해 나가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덕담을 전했다.

 

남서울관세사무소(옛 남서울통관사)는 국내 첫 지하철(청량리역~서울역)인 1호선이 개통되고, ‘K-푸드’의 대표주자로 세계 60여 개 나라의 과자 시장을 휩쓰는 ‘초코파이’가 탄생하던 해인 1974년 5월 10일 고 홍사목 관세사가 서울시 영등포구 가리봉동에 ‘남서울통관사’라는 회사명으로 창업했다.

 

당시에는 통관업자의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통관업을 하고자 할 때는 세관장의 별도 허가를 받도록 했으며, 1970년 관세청 설립 후에는 T/O제(정원제)를 두고 관세청장의 사전 인가 를 받지 않고는 통관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따라서 ‘남서울통관사’는 남서울세관장(현 구로세관장)의 관할 지역에서 개업 허가를 받아 창업할 수 있었다.

 

1970년대는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가공 무역을 통한 고속 성장을 하던 시기였으며 온 국민이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다. 남서울통관사는 정부가 1975년 12월 22일 관세법 개정시 통관업자 제도에서 관세사 제도를 신설하고 1976년 1월 22일 시행함에 따라 ‘남서울관세사무소’로 개명했다.

 

 

 

따라서 관세사 업계에서 5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 관세사는 1949년 ‘세관화물취급인’이라는 제도로 설립한 ‘선광관세사무소’와 함께 ‘남서울관세사무소’가 업계 2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게 됐다. 즉 관세사 제도 이전에는 ‘세관화물취급인(1949~1967년)’ 및 ‘통관업자(1968~1975년)’란 이름으로 관세사무실을 세웠으며, ‘남서울관세사무소’는 ‘통관업자’라는 제도하에서 관세사무소로 개업해 현재까지 존속하는 회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최초의 부자(父子) 합동 관세사무소 탄생

 

남서울관세사무소가 2001년 2월 2일 부자(父子) 합동 관세사무소라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것도 국내 관세사 업계에서는 최초의 기록이 됐다. 남서울관세사무소는 1988년 3월 구로세관 소속의 안양출장소가 안양세관으로 승격됨에 따라 안양세관 관할로 이전했고, 1997년 2월 안양세관이 안양시 호계동에서 의왕시 소재 경인 I.C.D로 이전함에 따라 경인 I.C.D로 이전했다.

 

남서울관세사무소는 1998년 2월 인천국제공항이 ‘보세건설장’ 특허를 받음에 따라 공항 건설에 필요한 레이더 등 시설재 수입 통관의 50% 이상을 맡아 ‘보세건설장’의 수입화물을 통관 및 운용했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과 더불어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내에 남서울합동관세사무소의 지사를 개설했고, 2004년 10월에 본사를 안양에서 인천항으로 이전했다.

 

2007년 1월에는 부산에도 진출해 남서울합동관세사무소(대표: 이관우 관세사)의 부산지사를 설립했었지만, 지금은 폐업했다. 2012년 1월 남서울관세사무소는 AEO 인증 취득 및 AEO 컨설팅업체로 등록했고 현재까지 AEO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2017년 11월 대한민국 소비자 대상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소비자대상 2017 올해 최고의 기업’에 선정되었고, 2023년 10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부터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뽑혔다. 또 2023년 12월에 고용노동부로부터 ‘일·학습 병행 기업’으로 지정돼 현재 경인여자대학교와 산학 협력을 하고 있다.

 

관세사로서의 인생 전환점 맞은 홍영선

 

남서울관세사무소의 현 대표인 홍영선 본인은 ‘천생 관세사’는 아니었다. 중앙대학교 졸업 후 1980년대 최고의 직장이라는 ‘효성물산’에서 만 4년을 근무했고, PHILIPP BROTHERS CO., LTD라는 세계적인 원자재 TR A DING 회사에서 만 2년 근무했다.

 

“효성물산을 나온 이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철강·비철금속의 도매상이 되겠다는 각오로 한백금속(주)을 1988년 4월에 설립했고, 포스코의 스테인리스강 생산 시작과 더불어 포스코 계열회사의 서울 대리점권을 1989년 3월에 취득했을 때 나이가 만 32세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에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고 평생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었습니다.”

 

홍영선 관세사는 본인이 관세사가 되기까지의 수많은 방황이 있었다고 말한다.

 

“포스코 계열사의 스테인리스강, 특수강 대리점을 5년 동안 운영해 보니 큰 비전이 없어 보였고, 외국으로 진출해 사업하기 위해 한백금속(주)를 정리했습니다.

 

그 후 1993년 베트남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로 마음을 정하고 현지를 방문해 사업 아이템을 찾는 등 철저히 준비한 후, 남서울관세사무소의 창업자이신 부친을 찾아 뵙고 약간의 사업 자금과 베트남에 혼자 체류하는 6개월 동안 가족의 생활비를 부탁드렸습니다.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 부친께서는 야단을 치는 대신에 저를 달래기 시작하셨고, 사무실을 정리했으니, 남서울관세사무소에 출근해 경리 일도 보라고 하셨습니다. 친구 사무실에 임시로 출근하던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의 전환점은 갑자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저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경리 업무에만 관여하고 나머지 시간에 제 업무를 보면서, 부친의 환심을 얻어 사업 밑천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관세사무소의 현실은 생각한 것과 정반대였다. 직원들은 천방지축으로 행동하고, 회사의 기강도 엉망이었다.

 

 

“저를 두고 대표이신 고 홍사목 관세사의 아들이 고 낙하산 출신이며 실력도 없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서 일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하는 바람에, 저는 본의 아니게 개인적인 사업 계획을 연기하고 회사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주력하게 됐습니다.

 

졸지에 원하지도 않은 사무장이 된 저는 그동안 익혀온 무역 업무와 회사 운영 경험만으로는 관세사무소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겨 회사의 기강을 바로잡고, 건실한 관세사무소로 재탄생시킬 때까지 남서울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생소한 관세 업무를 공부하고 관세 행정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세관에서 더러 망신도 당하고 세관원들과 다툼도 여러 번 겪으면서 본인이 인생의 패배자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홍영선 관세사는 사회생활을 모두 원점에서 시작하자는 각오로 1994년 3월 한국관세사회에서 주관하는 관세사 사무원 교육을 이수했는데 뜻밖에도 성적이 좋아 ‘우수상’을 받았다. 이에 용기를 얻어 1995년 만 37세에 관세사 시험에 도전해 보려고 부친을 설득해 새로운 사무장을 영입했고, 본인은 오전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 후 나머지 시간에 관세사 시험공부에 매진하게 됐다.

 

“처음 시험 준비 결심을 밝히자, 부친을 필두로 주변 분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렸습니다. 그래도 결심은 더욱 굳어져서 1995년 ‘관세법’에 의한 마지막 제도였던 관세사 시험을 보았으나 합격점에 가깝게 불합격했습니다. 관세사 시험 준비 중에 고시원에서 몇 달 생활하다 집에 복귀했는데, 아내는 공부에 집중하는 남편에게 차마 생활비 얘기를 못 하고 집에 있던 패물을 다 팔아 생활비로 사용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공부보다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뒤 사무실 운영과 병행하며 개인적으로 2년간 레스토랑을 운영했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체가 잘 되어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 되자 관세사 시험공부는 자연히 등한시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8월 부친이 낙상해 머리를 크게 다치셨으며 학창 시절부터 천방지축으로 생활했던 저는 장남으로서 부친께 큰 불효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울러 이번 관세사 시험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이번에 다시 떨어진다면 능력도 없는 사람이 관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으로 남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음을 다진 홍 관세사는 그 후 3개월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사즉생’의 심정으로 공부하는 등 최선을 다해 제15회 관세사 시험에 응시했고 1998년 12월 초 관세사 시험에 수석합격을 했다. 이후 정식으로 관세사가 된 뒤 관세 행정 분야에서 실력을 갖춘 최고의 관세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결과 2005년부터 현재까지 중앙대학교 및 각종 협회 등에서 무역·관세 분야 강의를 계속해 오고 있다. “관세사 자격증은 관세 행정과 무역 분야의 전문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줄 뿐 그 자체가 부(富)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세사사무소에 근무하는 동안 1997년 IMF사태,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 등으로 국내 경기가 냉각됐고, 그로 인해 관세사 업계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본인은 지금의 이 위기도 무난히 극복할 것이며, 50년 이상의 내공을 다져온 ‘남서울맨’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서울관세사무소를 국내에서 최고의 관세사무소로 유지·발전시킬 것을 확신합니다.

 

돌이켜 보면 남서울관세사무소를 창업하신 ‘故 홍사목 관세사님’이 남서울이라는 울타리를 튼튼히 만드셨고, 저를 관세사 업계에 입문시켜 주셔서 오늘의 제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돌아가신 분의 큰 뜻을 이어 남서울관세사무소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선친께서 생전에 베풀어 준 기회와 배려 덕분이라는 생각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봉사에 앞장서는 남서울관세사무소

 

홍 관세사는 남서울관세사무소가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인구 감소폭이 커지면서 인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감소를 막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도 빠르게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다문화가족 지원, 결혼 이민자 정착을 위한 지원, 우리 사회 전반에 상호 존중을 기반한 다문화 수용성 제고를 위한 교육 등이 담긴 제4차(2023~2027년) 다문화가족 정책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다문화인들의 강점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소통하고 다가서야 합니다.”

 

 

 

남서울관세사무소에서는 2018년부터 다문화가족에 후원 및 봉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홍영선 관세사는 다문화가족과의 소통을 위해 마술 실력을 꾸준히 연마하여 ‘홍영선 마술사’로서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인천시 외국인종합지원센터’ 후원으로 마술동호회(HYS매직클럽, 회장 홍영선 마술사) 주최로 마술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5월 25일 토요일에 인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인천시 다문화가족들을 초대하여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저도 이제 6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으며, 관세사로서 업계 및 나라 발전에 힘쓰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 사회에 무언가 보람되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홍영선 관세사(홍영선 마술사)가 남서울 관세사 발전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다문화가족’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홍영선 관세사 프로필

▲ 現 남서울관세사무소 대표관세사

▲ 現 중앙대학교 미래교육원 경영학과 객원교수

▲ 관세청 공무원 강의, 관세사 시험 출제위원으로 10년 이상 활약

▲ 한국관세사회 이사, 홍보기획위원회 위원장, IFCBA 위원 역임

▲ 2020년부터 현재, 중앙대학교 미래교육원(구 평생교육원) 객원교수

▲ 한국통합물류협회, 생산성본부 실무교육 강의

▲ 2009~2010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해운물류학과’ 겸임교수

▲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강의

▲ 중앙대학교 석박사 과정 이수, 2006년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

▲ 1999년 신림동 고시촌 ‘춘추관’ 등에서 관세사 수험생에 강의

▲ 1998년 제15회 일반관세사 시험 수석합격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의사의 꿈을 버리고 인류 최고의 지혜를 만든 사람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정부 측의 강행으로 의대증원이 확실시 되어가며 바야흐로 의사 전성시대가 도래되었다. 현재 의대정원 3058명이 5058명으로 대폭 늘어나며 10년 후에는 5만명 이상의 의사가 늘어나게 된 것은 반드시 우리 사회에 포지티브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존재하듯이 이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도래될 것임은 명확하다. 첫째는, 의사를 목표로 하는 광풍시대가 사회구조를 더욱 불균형으로 만들 것이다. 오로지 계급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본인을 비롯해 부모들이 더 미친듯이 나댈 것은 지금까지의 입시 흐름을 봐서도 틀림없다. 그래서 흔히 회자되는 의대입학을 위한 반수생, N수생의 폭증이 불 보듯 뻔하며 이 수요는 이공계의 우수한 인재를 거의 고갈시켜 국가과학기술발전에 큰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SKY대 등의 이공계 우수인재들이 의대입학을 하기 위해 자퇴를 하고 의대입시 전문학원에 몰려드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현재 바이오, AI, 우주, 반도체 등이 글로벌 산업의 중추로 국가간 초경쟁시대에 거꾸로 가는 현상이고 이는 국가미래에 매우 불안한 느낌을 준
[인터뷰] 창립 50주년 부자(父子) 합동 남서울관세사무소 홍영선 관세사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국내 최초의 부자(父子) 합동 관세사무소인 남서울관세사무소가 지난 5월 12일 하버파크호텔에서 창립 50주년 행사를 열고 혁신과 도약의 100년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는 특히 장시화·이용철·이영희·김용우·이상태·손종운 씨 등 남서울 창업 멤버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현재 남서울관세사무소를 이끄는 홍영선 대표관세사는 이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남서울관세사무소의 50주년은 관세사회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뜻깊은 기록이자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전·현직 남서울 식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다져온 남서울관세사무소의 50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혁신과 도약의 100년을 다짐합니다”라고 전했다. 기념식에는 이승남 국가원로회의 정책위원 겸 KBS 前 국장도 참석해 “지금까지 믿음으로 50년을 지켜온 만큼 앞으로 100년도 믿음으로, 튼튼하게 성장해 나가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덕담을 전했다. 남서울관세사무소(옛 남서울통관사)는 국내 첫 지하철(청량리역~서울역)인 1호선이 개통되고, ‘K-푸드’의 대표주자로 세계 60여 개 나라의 과자 시장을 휩쓰는 ‘초코파이’가 탄생하던 해인 1974년 5월 10일 고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