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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간] 세종과 효령대군의 우애를 밝힌 '세종대왕 어필(御筆) 탈취 사건과 600년 수난사'

이상주 작가의 세종대왕 친필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 11년 추적스토리

 

(조세금융신문=구재회 기자) 민족문화를 크게 일으킨 세종대왕의 친필은 아쉽게도 한 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에 세종의 친필을 찾으려는 노력이 꾸준히 계속돼 왔다. 그 결과물이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이다. 세종이 형인 효령대군에게 선물한 어사효령대군방문은 역대 왕들이 임금의 친필로 여기고 보존에 극히 신경을 썼다.

 

또 세종의 친필이라는 문헌과 증언이 수백년에 걸쳐 내려오고 있다. 왕의 어필을 11년간 추적해온 이상주 왕실문화가가 최근 쓴 '세종대왕 어필(御筆) 탈취 사건과 600년 수난사'에는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이 세종의 어제(御製) 어필(御筆)임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가 제시돼 있다.

 

효령대군친필전문, 헌종(재위1834~1849년) 때 형조에서 어사희우정문 소유자로부터 받은 글, 철종(재위 1849~1863년) 때 효령대군 종친회에서 쓴 탄원서, 충청도 화양서원 통문, 경상도 상주 흥암서원 통문, 경상도 함창도회 통문, 철종의 격쟁 비답, 철종의 내사완문, 철종이 형조와 한성부에 내린 정부여형한양사게판절목(政府與刑漢兩司揭板節目) 등이다.

 

또 작가는 글씨를 쓰는 양식에 따른 친필 가능성도 탐구했다. 조선시대 왕의 글 절대다수는 승지를 비롯한 문신과 사자관이 쓴 것이다. 왕이 직접 쓴 글과 신하가 대신 쓴 글은 형식과 단어 선택 등 에서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게 임금을 상징하는 용어 표현이다. 신하가 대신 쓴 글은 최고 존엄 의미를 담았다.

 

왕을 칭하는 용어인 성상(聖上) 등의 글자를 높이고, 다음 글자는 줄을 바꿔 쓰는 형식이다. 또 내용에서도 왕을 지칭하는 성상(聖上) 등의 단어를 선택했다. 반면 왕이 직접 쓴 글은 옆의 글보다 한 글자를 높여 쓰는 공경 형식에 연연하지 않았고, 왕을 지칭하는 단어도 평범하게 나를 뜻하는 여(予)가 보인다.

 

이 같은 눈으로 보면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신하가 쓴 어제(御製) 보다는 임금이 직접 쓴 어필(御筆) 가능성이 높다.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 글은 34.5 x 53.0cm 크기의 고급 왕실용 종이 10면에 쓰여 있다. 각 장마다 네 면을 세로 28.1~28.5cm, 가로 23.5~23.7cm로 묵필로 그었다. 그안에 세로 1.5~3cm, 가로 2.0~3.0cm 크기로 글씨를 썼다. 제목인 ‘어사희우정’ 다섯 글자는 아래 글자보다 3cm 높여서 상일자(上一字) 하였다.

 

이에 비교되는 게 철종이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을 세종의 친필 판정 후 관부에 내린 내사완문(內賜完文)이다. 내사완문은 임금의 말씀을 사자관이 정서한 것이다. 두 문서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첫째, 자수의 규칙성이다.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은 각 행의 글자 수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각 행의 글자는 2~3자가 많고 적음이 있다. 반면 내사완문은 직접 왕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 각 행에는 10자씩을 지키고 있다. 왕과 연계된 단어가 있는 행에는 9자를 썼다.

 

둘째, 왕을 상징하는 존칭어 표현이다. 어사희우정에서는 왕을 지칭하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인 ‘어사희우정’ 다섯 글자만 아래 글자보다 3cm 높여서 상일자를 하였다. 또 국왕(國王), 친제(親題) 등의 존어에 대해 행을 달리해 상일자 하지 않았다. 국왕을 자칭하는 단어는 모두 여(予)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내사완문은 임금에 대한 용어에 지극한 공경을 담았다.

 

열성조(列聖祖), 양성조(兩聖祖), 상지(上之), 어휘(御諱), 어필(御筆), 왕약왈(王若曰) 등의 존어에는 줄을 바꿔서 두 글자를 높인 상이자(上二字)했다. 또 판하(判下).판부(判付) 등의 존어는 줄을 바꿔 한 글자를 높인 상일자(上日字)했다.

 

셋째, 국왕의 보인(寶印)이다. 국왕은 문서 성격에 따라 다른 용도의 옥새를 찍는다.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에는 왕의 도장이 찍히지 않았다. 보인 없이 ‘국왕인 동생 제’를 뜻하는 국왕제도(國王第 )가 적혀있다. 어보를 찍지 않은 것은 국가 공문서가 아닌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또 이례적으로 문서에 세종이 휘(이름)를 쓴 것은 국왕의 격식에 앞서 동생으로서의 예의를 차린 것일 수가 있다. 세종은 두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에게는 임금의 예절이 아닌 형제의 정을 우선시했다. 이 같은 점은 이 서첩이 세종의 친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세종대왕 어필(御筆) 탈취 사건과 600년 수난사'에는 역사자료가 화보로도 구성돼 있다.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 철종의 내사완문(內賜完文), 정부여형한량사게판절목(政府與刑漢兩司揭板節目), 효령대군친필전문(孝寧大君親筆傳文), 고종 7년에 어사희우정문 등을 인쇄한 목활자(木活字) 사진 70여장이다.

 

저자인 이상주 왕실문화작가는 세종대왕 왕자 밀성군파종회학술이사로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사직 환구 왕릉제향 전수자다. 서울시립대 시민대학 등에서 세종대왕 스토리를 강의하고, 저술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에는 ‘세종의 공부’, ‘도봉산에 깃든 세종왕자 영해군 500년 이야기’, ‘(중종왕자) 봉성군과 을사사화(번역)’,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조선명문가 독서교육법, ‘태조와 건원릉’, ‘태종과 헌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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