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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데스크 칼럼] 아이 낳고 싶지 않은 여성이 대부분인 나라

-합계출산율은 희망출산율과 엇비슷…무엇이 한국여성의 출산의지를 말살시켰나?
-모성보호‧교육‧보건의료 민영화에 혈안…유리천장, 남여임금격차, 왜곡된 성역할
-불편한 진실 외면, 대증요법만 깔짝깔짝…한심스러운 미디어 작태 언제까지 방치?

(조세금융신문=이상현 편집국 부국장) 1년 가까이 저출생 문제를 장기 취재하면서 줄곧 든 생각이 한국의 미디어 환경이다. 방송카메라는 온종일 독신 유명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 연예인 가족의 일상을 샅샅이 훑는다. 시청자들은 간간이 미소 짓고, 자주 한숨 짓는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일상은 대략 비슷하다. 택배상자를 뜯어 찰나의 소소한 행복감에 젖고, 대기업의 반제품 요리재료꾸러미(meal kit) 포장을 뜯어 백종원의 지침대로 요리도 해먹는다. 다국적 미디어 플랫폼 N사의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 침대에 누워 SNS를 뒤적일 시간도 사실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그저 그런, 그냥 일상의 연속이다.

 

바다가 보이는 별장에서 진짜 정성을 기울여 만든 요리를 함께 모여 먹는 장면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는다. 1인당 입장료가 15만원인 호텔 수영장에서 아이와 신나게 물장난을 치는 장면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 값이 850만원짜리라는 걸 결혼한 친구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한숨은 잠시 분노 섞인 탄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TV나 유투브를 보는 동안 내 인생과 연예인의 인생은 그럭저럭 공존한다. 폼나는 부분은 연예인 인생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궁색하고 구질구질한 부분은 그냥 내 원래 인생이다. 미디어 속에서만 공존할 수 있는 두 부류의 인생이기 때문에, 미디어 밖에서는 더 없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이른바 관찰예능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자기 인생은 그렇게 저마다 이미 결정된 일상의 연속일 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

 

미국 경제학자 란트 프리쳇(Lant Pritchett)은 1994년 출간한 <희망출산율과 인구정책의 영향(Desired Fertility and the Impact of Population Policies)>이란 책에서 “국가별 실제 출산율 차이는 각국(여성)의 희망출산율(desired fertility)과 거의 90% 유사하다. 따라서 실제출산율 차이는 희망출산율 자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특정 국가의 합계출산율은 그 나라 여성들이 평생 몇 명의 자녀를 낳고 싶은지에 거의 정확히 비례한다는 얘기다.

 

당연하고 동어반복적 얘기 같지만,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은 사실 출생률이 너무 높아 수십년간 산아제한정책을 펴온 이집트의 사례(사실은 한국도 한 때 그랬다)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슬람 율법 또는 전통에 따라 출산을 조절하는 것을 ‘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로 본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해 여성들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한다. 이집트 사례를 ‘여성인권’이라는 얼개로 보면, 한국사회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집트는 최근 합계출산율이 2.9명까지 낮아졌으며, 인구 수(2023년말 현재 1억 1400만명)가 유지되는 대체출산율(2.1명)이 이 나라의 출생률 목표다.

 

출생률이 매우 높은 수준의 이집트와 지구촌 초격차 최저 출생률을 고수하는 한국은 대조적이다. 사회적 굴레를 떨치지 못하는 이집트 여성의 희망출산율과 공동체의 윤리적‧훈고학적 협박에도 급전직하로 추락해온 한국 여성의 희망출산율은 역설적으로 닮았다. 억압되고 강요된 희망을 무의식적으로 수용(이집트)하거나, 갓 자각한 충격으로 필요 이상 반발(한국)하는 반응은 정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왜곡된 집단심리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닮았다.

 

성공적인 저출생 정책을 꿈꾸는 정치인이 있다면, 바로 이 ‘희망출산율’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싶은 가정, 직장, 사회를 만드는 거다.

 

알렌 응(Allen Ng) AMRO(ASEAN+3 거시경제연구소) 거시경제 감시 그룹장은 ▲사회구조 ▲종교적 신념 ▲경제적 번영 ▲도시화 ▲피임 접근성 등이 출산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여성들에게 이 변수들이 어떤 의미인지 간단히만 살펴봐도 지구촌 초격차 최저 출생율 한국의 비밀이 밝혀진다.

 

한국의 사회구조에서 국가가 꼭 책임져야 할 모성 및 가족 보호와 교육, 보건의료는 대거 민간부문에 맡겨져 있다. 기업과 민간병원, 사립학교와 학원이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유료로’ 떠맡고 있다. 그걸 자유 민주주의라고 우긴다. 자본에 이윤축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국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지만, 이 역시 자본의 전략에 깊숙이 포섭된 개인들이다.

 

미키토 마수다(Mikito Masuda) 고마자와(駒澤)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내 아이의 질을 높이려 자녀 수를 줄인다”고 했다. 아쉬라프 달리 아프리카기자협회(CAJ) 사무총장은 “한국인들은 국민소득이 증가한 시기에 생활비와 사치품 소비가 증가했고,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일해야 했다”고 진단했다.

 

아쉬라프 총장은 “더 일해야 하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고, 자영업자 같은 경우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신문과 미디어 플랫폼은 매우 발달했는데, 이들은 가족적 가치를 증진하는 수단이 아닌 뉴스와 오락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시화’는 일반적으로 출생률을 낮춘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한국 전국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0.5명 수준이다. 베트남도 농촌이나 어촌은 합계출산율이 3.5명 수준이 유지되는 곳도 많지만, 수도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는 1.3명대로 축소돼 비상이 걸렸다.

 

선진국들 대다수가 높은 피임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어 원치 않는 임신 가능성을 낮춘다. 그런데 ‘희망 출산율’에서 살펴본 것처럼, 원치 않는 임신이 잦은 게 아니라 임신을 원치 않는 세태가 공고해졌다는 게 진실이다.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의 가치를 강조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공히 그렇다. 신부님이나 스님도 본인의 인생과 별개로 신도들의 가족지향을 독려한다. 그런데 기복신앙과 제사장 권력이 강조되는 한국의 종교계는 다른 나라보다 신도들의 가족지향적 삶에 크게 기여를 못한다. 제사장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젯밥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을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한국이 객관적인 사회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고 여성들이 자녀 출산을 희망하도록 할 다른 수단은 없다. 물론 사회환경이나 사회심리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요인이 있다. 여성의 자유와 능력에 대한 관점이다.

 

한국심리학회장을 지낸 곽금주 교수는 자녀를 지키고 돌봐야 하는 환경은 여성에게 ▲다중작업 ▲대인관계 능력 ▲집중력 ▲동기부여 ▲참을성 ▲전략수립 등 계획능력 등을 극도로 높여준다고 지적했다. 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뇌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돼, 말 그대로 초인적 뇌 개발 과정이 초고속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물론 곽교수의 접근은 모든 방면에서 높은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자기 능력을 모든 방면에서 높은 수준으로 만들고 싶도록’ 하는 것은 다시 사회의 몫, 국가의 숙제다. 한국 사회는 한국여성들의 자기능력 개발에 족쇄를 채웠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에 대주주 일가를 제외한 여성 등기이사가 몇이나 되는가? 남녀 간 임금차이는 왜 개선되지 않는가? 명색이 선진국, 복지국가에서 출산과 육아는 왜 ‘각자도생’의 영역인가? 여성 정치인의 수는 왜 압도적으로 적은가?

 

대한민국 남성들은 정말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가? 여자들에게 제한된 성 역할과 일정한 한도를 부여한 봉건적 유교국가가 혁명적으로 극복됐다면 그 우월하다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리며, 결론적으로 하나만 되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희망출산율’이 개선될 것으로 보는가? 이런 불편한 얘기를 하지 않고, 정말 출생률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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