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정부가 지난해 필요한 돈을 빚으로 돌려막는 과정에서 법 위반 소지가 심각하다는 국회 지적이 나왔다.
상황에서 따라선 국회 기재위 차원의 형사고발 검토도 필요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정부 2023년 결산심사.
이날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고양정)은 “기획재정부가 세수 결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경을 편성하지 않고 위법적인 방법을 고집했다”라며 “이는 헌법 제54조 제1항에 명시된 국회의 예산심의·확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돈은 그 사용목적과 조성방법 등에 따라 용도별 지갑을 각각 따로 둔다.
가계에서도 주담대 상환용 통장, 생활비 통장, 비상금 통장, 학자금 통장 등 지출 용도에 따라 통장을 여러 개 두는 것과 같다.
정부에서도 일반회계란 지갑에 들어가는 돈은 정부의 일반적인 운용 등으로 사용하지만, 특별회계는 특별한 사업 목적으로 쓰이고, 기금이란 지갑은 아예 법률에 의해 지출과 관리가 엄격히 제한된다.
가계와 달리 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정부 지갑들끼리 돈이 섞이는 것을 금지한다. 왜냐하면 각 지갑에 들어간 돈에는 제각각 목적이 있고, 한쪽 지갑에서 돈이 없다고 다른 지갑에서 마구 돈을 꺼내 쓰면 다른 지갑 쪽에서 필요한 지출을 못 한다.
다만,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을 통해 제한적으로 정부 일반회계가 돈을 꿔올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놨다. 공자기금이란 기금들의 여윳돈을 모아놓은 일종의 예금이다.
2023년은 56.4조원 세수펑크가 난 해인데,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제1교역국인 중국을 언젠가 탈피해야 할 문제거리로 지적하면서 2022년 하반기 교역실적이 급감했다.
그로 인해 기업 등이 큰 손실을 입으면서 2023년 법인세 등이 주저앉았다. 기업이 돈을 못 벌면 근로자도 못 벌고,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도 줄어든다.
세금으로 현금을 돌려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현금 흐름에서 펑크가 난 셈인데, 이럴 때 정부는 국채발행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채는 계획 이상으로 추가 발행을 안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는데, 국채를 추가 발행하려면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금들의 여윳돈이 모여져 있는 공자기금에서 돈을 꾸기로 했다. 공자기금에서 돈을 꾸면 국채로 잡히지 않기에 눈가림도 하고, 돈도 꿀 수 있었다.
2023년의 경우 법적 대출 한도가 최대 9.6조원이었는데 2023년 9월 시점에서 공자기금 계좌에는 이만한 현금이 없었다.
당시 추경호(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당시 기재부 장관) 경제팀이 꾀한 수법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내 원화자산을 공자기금에 붓고, 공자기금이 채워지면 9.6조원을 풀로 땅긴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외평기금에서 직접 돈을 꿀 수 없는데, 공자기금을 중간에 끼워 넣어 대출받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일부 언론에선 ‘묘수’인 양 표현했지만, 실질적으로 편법대출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자가 발목을 잡았다. 원래 2023년도 예산안에는 공자기금에 8.6조원의 이자를 갚도록 계획돼 있었다.
2023년 이전에도 공자기금에 빌린 돈이 있어서 정부가 예산안을 만들면서 2023년 공자기금 예수이자 8.6조원을 갚겠다고 했었는데, 이 돈을 갚으면 공자기금에서 9.6조원을 풀로 땅겨도 1.0조원밖에 빚을 질 수 없게 된다.
그러자 정부는 소위 ‘배 째’를 선언했다.
분명 예산안에는 공자기금 이자 8.6조원을 갚겠다고 했는데, 그 이자를 내년으로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불용 선언).
원래 불용의 개념은 원래는 쓰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나놓고 보니 안 써도 될 때 안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이자는 의무이기에 안 줘도 되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추경호 기재부는 자연스러운 불용이란 신개념을 창조해, 공자기금 이자 8.6조원을 멋대로 주지 않고 2024년으로 넘겨 버렸다.
민간에서 이자 8.6조원을 배 쨌다간 즉각 빨간 딱지가 날아갔겠지만, 빨간 딱지를 보내야 할 주체가 정부였던 터라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어갔다.
이리하여 정부가 2023년 회계연도에 2024년으로 넘긴 공자기금 빚은 무려 18.2조원에 달한다. 8.6조원에 대한 연체이자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런 식으로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행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계속 세금이 예상만큼 들어오지 않아 현금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우체국보험 적립금까지 손을 댔다.
보험들은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항상 일정 정도의 돈을 쌓아놓는데, 우체국보험 적립금이 그러한 돈이다. 이 돈은 사실 명의는 우체국이라고 해도 실상은 고객 돈이라고 봐야 하는 데 정부는 일반 국민 보험금에서 2500억원이나 빌려다 썼다.
당연히 이 돈도 국가채무로는 집계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정부는 지방교부세도 임의로 18.6조원을 주지 않았다. 정부는 세금 들어온 것의 일부분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세금이 예상보다 60조원 가까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자 곧바로 지방교부세 18.6조원을 주지 않았다.
이는 헌법상 국회 예산심의권 침해 소지가 매우 상당하다는 것이 김영환 의원의 지적이다.
국회에서 한번 예산을 의결하면, 국회 동의 없이 바꿀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국가 재난 수습을 위해 예산을 배정해놨는데 세금이 안 들어온다고 안 쓴다는 건 정부가 공무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세금이 안 들어오건 말건 쓰도록 정해져 있는 돈은 써야 하는데, 정부는 세금수입 감소 예측을 근거로 국회 예산안에서 지자체 의무지급이 약정된 교부금 18.6조원을 안 준 것이다.
정부 논리대로 하자면 정부도 재량사업에서 무조건 37.8조원을 감액해야 한다. 정부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일부 줄이긴 했는데 이 역시 헌법상 국회 예산권을 심대하게 침해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러한 행태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정 운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재정 운영에서 건전성과 책임성 모두를 잃어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어 기재부가 임의로 지자체 교부세를 깎고, 국회 예산심의권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재부의 예산배정권 남용을 막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기재부의 예산배정권 남용을 바로잡고,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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