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 본관 전경 [사진=한국세무사회]](http://www.tfmedia.co.kr/data/photos/20250624/art_17497197406619_32cffc.jpg)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위탁 사업 운영 방식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한 조례 개정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 조례에서 수탁기관에 의무화했던 ‘회계감사’ 조항을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전환하는 개정안이 광역과 기초를 막론하고 잇따라 발의되고 있으며, 다수 지자체가 상임위 심의 또는 의회 일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발의된 전라북도를 포함하여 경기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광주광역시 등 6개 광역자치단체와 서울시 송파구, 경북 구미시, 경북 경주시 등 3개 기초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 개정안이 줄줄이 발의됐고, 이 중 송파구는 본회의를 이미 통과했다. 전국적인 입법 흐름이 뚜렷하게 형성된 셈이다.
이 같은 조례 개정 열기의 배경에는 한국세무사회(회장 구재이)를 중심으로 한 전국 지방세무사회 및 지역세무사회의 적극적인 건의 활동이 있다. 세무사회는 지난 수개월간 전국 각지의 지방의회 의원들을 직접 만나 현행 조례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회계감사’ 대신 ‘사업비 결산서 검사’ 방식으로의 전환을 제안해왔다.
실제 지자체 민간위탁 사무에서는 회계감사 명칭만 존재했을 뿐, 실무에선 수탁기관이 제출한 정산자료를 토대로 비용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결산서 검사’가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2024년 10월 25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2022추5125)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결산서 검사는 회계감사가 아니다”라고 판시했으므로 더 이상 이전과 같이 회계감사라고 규정하여 놓고 결산서 검사를 할 수 없게 됐다.
회계감사는 재무제표를 전제로 이뤄지는 절차다. 하지만 현실의 민간위탁 수탁기관들은 영세하거나 비영리 조직으로, 복식부기 의무자가 아니라 단식기장을 채택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애초에 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으며, 작성할 필요도 없던 조직들이다.
그런데 조례가 ‘회계감사’를 요구하면, 수탁기관은 감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회계지식이 있는 직원을 새로 채용하거나 외부 전문가에 의뢰해야 하고, 회계소프트웨어 구입과 행정 교육까지 포함하면 막대한 간접 비용이 발생한다. 회계감사라는 단어 하나가 행정적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이는 민간위탁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아파트 회계감사의 경우도 300세대 이상 단지는 공동주택관리법상 회계감사 의무가 있어 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문제는,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따로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전문직 회계직원을 따로 두거나,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외부 용역을 반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수탁기관에 대한 사업비 검증에 필요한 것은 정산 보고서와 증빙 자료를 토대로 사업비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절차인 사업비 결산서 검사이므로, 외부감사법상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그 목적과 절차가 달라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또한, ‘회계감사’라는 명목 아래 업무수행자를 회계사로 불필요하게 제한하게 되면, 그 수수료가 중소형 민간 수탁기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외부감사법상 회계감사 시즌인 3~4월에는 회계사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수요 폭증 속에서 정작 지자체 민간위탁 사업비 검사는 회계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급하게 서명만 하는 형식적 감사가 되기 일쑤다. 그 결과 사업비의 부정 사용을 걸러내지 못하고, 세금 낭비로 이어지는 사례 발생이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세무사회 구재이 회장은 “대법원 판결로 법적 명확성이 확보된 만큼, 이제는 세무사들이 현장에 투입되어 실질적인 회계검증을 책임지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며 “세무사를 통한 사업비 결산서 검사는 합리적인 수수료로 수탁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 단위의 세금 낭비를 막는 데도 실효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상임위 회의실 안에선, 행정 효율과 지역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름만 ‘회계감사’였던 낡은 규정은 이제 조용히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바뀐 현실, 바뀐 실무, 바뀐 책임감에 어울리는 새로운 제도가 전국적으로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