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8 (월)

  • 맑음동두천 -0.5℃
  • 맑음강릉 1.2℃
  • 맑음서울 1.6℃
  • 맑음대전 0.2℃
  • 맑음대구 2.8℃
  • 맑음울산 4.2℃
  • 맑음광주 2.1℃
  • 맑음부산 6.1℃
  • 맑음고창 -1.8℃
  • 맑음제주 5.7℃
  • 맑음강화 -1.6℃
  • 맑음보은 -2.5℃
  • 맑음금산 -2.6℃
  • 구름조금강진군 2.5℃
  • 맑음경주시 0.7℃
  • 맑음거제 5.1℃
기상청 제공

관세청, 반려동물 용품 수출‧수입액 역대 최대

지난 2019년 比 올해 수입 1.5배 상승…수출 4.4배 증가
고양이사료 수출 규모 최대…개사료 수출 확대 가속
유기농‧기능성 사료 고급화 영향…수입액‧수입단가 상승

 

(조세금융신문=안수교 기자) 코로나19 영향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증가한 영향으로 올해 1~9월 개‧고양이사료 등 반려동물 용품 수입‧수출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해 무역규모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28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반려동물 용품(사료‧의류‧방석 등) 수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56.1% 증가한 1억1600만원달러 였으며, 수입액은 17% 오른 2억9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반려동물 용품 수출이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 2019년(1월~9월) 대비 올해 같은 기간 수입은 1.5배 증가했지만 수출은 4.4배 증가했다. 또 지난 2021년 수출은 9개월 만에 1억1100만 달러 실적을 이미 달성하고 최대 수출 실적 기록을 갱신 중이다.

 

품목으로는 올해(1~9월) 고양이사료 수출이 가장 많으며 61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8.2% 증가했다. 개사료는 4700만 달려로 전년 동기 104.4% 상승해 뒤를 이었다. 고양이사료 수출 규모가 가장 크지만 개사료는 가파른 성장세로 수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주요 수출국으로는 일본과 태국, 호주 대만 등이다. 최대 수출국은 일본으로 전체 수출국 중 39%이며, 최대 수출품목인 고양이사료와 개사료도 일본에 가장 많이 수출됐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용품 수출 대상국이 지난 2019년 57개에서 2021년 67개로 확대하면서 2021년 반려동물용품 세계 수출시장 순위가 6계단 오른 26위가 됐다.

 

수입에서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로 유기농 기능성 사료 등 고급화 영향으로 사료 수입액 및 수입단가가 상승한 것이 특징이다. 사료 수입단가는 2019년 1kg에 4.1달러에서 꾸준히 증가해 올해(1~9월) 1kg에 4.9달러로 올랐다.

 

반려동물 용품 수입은 개사료가 가장 많고 고양이사료, 의류 등 기타용품이 뒤를 이었다. 주요 수입국은 중국과 미국 태국 캐나다 등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