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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리처드 닉슨의 특검해산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윤석열 행정부가 끝내 채상병(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목전에 다다르려는 듯하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야당 독주로 규정하고,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었다.

 

프랭클린 대통령도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도 못 하리란 법이 없다는 말이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법률 환부와 보류 거부를 다 합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645번,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584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250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81번, 율리시스 그랜트는 93번,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82번, 로널드 레이건 78번, 제럴드 포드 66번, 캘빈 쿨리지 50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저 무수한 거부권 행사 가운데 채상병 특검법 거부와 같은 사례가 있는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된 리처드 닉슨은 아치볼드 특검이 나오는 것을 막진 않았다.

 

물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거부권을 기억할 정도라면 워싱턴 포스트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 보도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닉슨은 아치볼드 특검 발족 자체는 막지 않았지만, 워터게이트 수사의 심도가 깊어지자 대통령 고유권한을 사용했다.

 

1973년 10월 20일 토요일, 리처드 닉슨은 특검팀 해산을 거부한 리처드슨 법무장관을 사퇴시키고, 법무장관 대리인 윌리엄 러켈스하우스 법무차관도 사퇴시키고 나서야 그날 밤 특검팀을 해산시켰다.

 

그 대가는 비쌌다.

 

특검 해산 후 탄핵 정국이 들불처럼 퍼졌다.

 

1973년 11월 17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리처드 닉슨의 명언이 튀어나왔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러나 1974년 7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판단을 내린다.

 

‘대통령 고유권한은 존중받는 것이나, 그 권한의 기반은 법치주의에 있다. 법치주의와 대통령 고유권한이 충돌할 때 대통령 권한 위에 법치주의가 있다.’

 

리처드 닉슨은 탄핵당하지만 결말은 씁쓸했다.

 

대통령 권행 대행을 맡은 제러드 포드 부통령은 재빨리 리처드 닉슨을 사면했다. 공화당과 포드 대통령은 탕평이라고 포장했지만, 명약관화한 부패의 씨앗을 남겼다.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했지만, 인기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미국 쌍둥이 적자의 아버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 권력이 넘어갔으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양극화가 같이 퍼져갔다. 

 

소소한 변을 하나 달자면, 윤석열 행정부의 채상병 특검 거부와 리처드 닉슨의 특검 해산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윤석열 행정부의 거부권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거부권이 같지 않다는 주장처럼.

 

그저 나열했을 뿐이다.

 

먼고 먼 옛날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있었다. 분명히. 그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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