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은행

한국은행 경제보고서 발표…“은행 위기일 때 벤처캐피탈이 충격완화”

은행 위기시 기업 기술혁신은 위축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은행 신용경색 또는 위기 시 벤처캐피탈(VC)이 대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은행이 위기일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영향은 벤처캐피탈이 발달한 곳일수록 완화된다는 의미다.

 

10일 한국은행은 ‘BOK경제연구’에 실은 ‘은행 위기와 벤처캐피털이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Banking Crisis, Venture Capital and Innovation)’ 보고서를 통해 은행 위기 기간엔 벤처캐피탈과 같은 대안적 금융수단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해당 보고서는 31개국 제조업체의 혁신활동을 20개 산업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토대로 은행위기 자료와 켄처캐피탈 자료를 결합해 분석한 것이다.

 

먼저 은행이 위기일 때의 부정적 영향은 벤처캐피탈이 발달한 곳일수록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은행 위기란 한 국가의 은행들에 갑작스럽고 심각한 은행계좌인출이 발생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 등이 급증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한은 분석 결과 한 국가의 벤처캐피탈 지수가 평균 3.786(7점 만점) 보다 1.458점 이상 높을 경우 은행위기의 특허 출원수(인용수‧독창성‧일반성)가 감소하지 않았다.

 

벤처캐피탈 투자자들이 금융지원은 물론 사업적 네트워크, 경영 및 기술적 컨설팅, 모니터링, 멘토링 등 비금융적 자원을 제공하면서 은행의 대체금융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벤처캐피탈로 인한 이 같은 완화 효과는 특히 지적재산권 제도와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확립된 나라일수록 컸다.

 

또한 한은 분석 결과 은행이 위기일 때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도 위축됐다. 외부금융에 의존하는 산업일수록 은행 위기 발생시 혁신활동이 급격히 위축됐다.

 

성은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은행 신용경색 또는 은행 위기 시 벤처캐피탈이 대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벤처캐피탈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벤처캐피탈 시장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제도적 뒷받침 없인 효율적인 투자지원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